지난달 28일자 한국일보 칼럼'메아리'를 읽은 독자가 볼멘소리를 했다."이달 중순 <하얀 아오자이> 가 순수 베트남 상업영화로는 처음 국내 전국 극장에서 개봉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여태 감감소식이니 어떻게 된 거냐." 칼럼을 쓴 당사자로서 책임도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수입, 배급을 맡은 영화사'좋은 친구들'의 김태형 대표에게 "왜 개봉한다고 해놓고 이직도 안 하는 거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도 답답하다고 했다. "잘 알잖아요. 그게 제 맘대로 됩니까. 저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한달 째 해대고 있습니다." 하얀>
▦그의 질문 상대는 물론 극장이다. 더 정확히는 롯데시네마이다. 다른 멀티플렉스들이 아예 만나주지도 않거나,"성격이 맞지 않다""이미 배급라인이 짜여 있다"는 뻔한 핑계를 대며 외면했지만, 그래도 롯데시네마는 "20개 스크린에서 상영해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디지털영사기 사용료(1,600만원)과 다문화가정 초대를 위해 '좋은 친구들'에서 구입하기로 한 입장권의 선불(3,000만원)을 요구했다. 나중에 부금(상영수익)에서 정산하자, 아니면 입장권에서 극장 몫(40%)만 먼저 받으라고 사정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멀티플렉스는 어떤 경우에도 손해를 보려 들지 않는다. 작은 영화, 예술영화도 예외 없다. 문화다양성도'쇼'일 뿐, 돈 앞에서는 미련 없이 버린다. <하얀 아오자이> 상영조건이나, 논란이 된 <집행자> 의 퐁당퐁당(교차)상영은 당연하다. 단 하루를 틀어도 80만원인 디지털영사기 사용료를 선불로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기대만큼 흥행이 안 되거나, 힘센 놈(할리우드 오락물)이 자리를 요구할 때 언제든 손해 없이 영화를 내릴 수 있기 위해서다. 이게 그들만의 '원칙'이다. <하얀 아오자이> 도 그 원칙에 막혀 비틀대며 11월을 보냈다. 하얀> 집행자> 하얀>
▦다행스럽게도 롯데시네마가 19일 그 원칙의 일부를 깼다. 예정보다 석 달이나 늦긴 하지만 내년 2월 25일 영화사가 구입하는 입장권 수익 일부만 먼저 받고 <하얀 아오자이> 를 개봉하기로 확정했다. 베트남에 진출해 4개의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면서, <7급 공무원> 같은 한국영화를 직접 배급까지 하고 있는 롯데시네마로서는 당연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분명 알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자국 영화를 처음으로 멋지게 상영해준 곳이 자신들이 즐겨 찾고 있는 그 롯데시네마라는 사실을. 이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보람이고 이익인가. 하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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