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여간 여의도 정가에서는 세종시와 4대강, 두 가지 이슈만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 이슈를 넘어 정치화된 이 두 가지 대형 이슈에만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식 판단으로 재단할 수만은 없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슈퍼 이슈 집중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는 이른바 '블랙홀'로 불린다. 대부분의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적어도 올 연말, 내년 초까지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슈퍼 이슈에만 집중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다른 이슈'가 묻히게 될 우려가 있다. 즉 다른 중요한 민생 현안이 많은데도 이런 문제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다.
가령 실업급여 확대, 등록금 상한제 도입,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부담 축소 방안 등 여야가 추진하는 서민 관련 법안들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는 첨예한 쟁점이 될 수 있는 노동관계 현안도 뒷전으로 밀린 분위기다.
또 다른 대형 이슈인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 같은 국가 과제들에 대한 논의도 전혀 진전이 없다. 아울러 대형 이슈만 부각될 경우 정부의 실정이나 여당의 잘못 등 여권의 문제점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세종시와 4대강에 몰두하는 사이에 여권의 다른 문제점들이대충 넘어가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23일 "여야가 대형 이슈에서 사활을 걸게 되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 다른 이슈들은 멀찌감치 밀려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대형 이슈의 '블랙홀' 현상을 두고 "대형 이슈와 다른 이슈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만도 없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야당을 향해 "왜 4대강 예산 때문에 나머지 전체 예산 심의를 거부하느냐"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이슈를 빼고 무슨 논의를 하느냐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며 "특히 4대강 예산은 다른 분야 예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야당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야 모두 특정 이슈에만 매몰돼 대형 이슈가 다른 이슈를 잡아먹는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은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는 공중전을 할 게 아니라 대화의 자리에 앉아서 문제를 구체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정치권은 정작 다른 체감 이슈에서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택 교수는 "정부ㆍ여당이 4대강이나 세종시 문제에서 해결 노력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 이슈를 둘러싼 대결 상황 해소 노력이 진전돼야 다른 이슈들도 동시에 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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