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도한 저어새 부리 저으면칠게는 화들짝 '생명의 율동'
칼 바람이 부는 11월 중순 강화해안도로를 질주했다. 섬 서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해안은 점점 물 대신 갯벌로 바뀌었다. 수평선 끝까지 또는 건너편에 자리잡은 석모도와 장봉도까지 닿을 정도로 갯벌은 드넓게 펼쳐졌다. 길게는 5~6㎞까지 뻗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구갯벌로 세계 5대 갯벌이며 천연기념물 지정구역이다.
40여종의 조류, 270종 저서생물 서식
강화도 남서쪽 화도면 여차리 부근 해변가. 세계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05호인 저어새를 쉽게 볼 수 있다. 저어새는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로 얕은 물가에서 좌우로 저어가며 먹이를 찾는다. 과거에는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우도에서 집단서식 했지만 최근에는 섬 남단에서 가까운 각시바위에서 발견된다. 갯벌 동식물 모니터링 활동을 해오고 있는 강화갯벌센터 김순래 센터장에 따르면 30쌍 정도의 저어새가 각시바위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만조 때 수위가 올라가면 낮은 곳에 둥지를 틀었던 놈들의 알은 유실돼요. 힘이 센 10쌍 정도만 매년 번식에 성공하는 셈이죠."
저어새 이외에도 강화갯벌에는 40여종의 조류가 발견된다. 저어새을 비롯해 노랑부리백로는 갯벌과 주변에서 서식하고, 검은머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등은 갯벌을 주요 이동통로로 이용한다. 새들이 갯벌을 터전으로 삼는 까닭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칠게와 갯지렁이는 추운 날씨 탓인지 구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김 센터장은 "갯벌은 겨울에도 얼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들이 깊이 파고 들어가서 겨울을 버티며 지낼 수 있죠. 1m 이상 파고들어가는 놈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도요, 물떼새류 도래지로는 서해안 갯벌 가운데 영종도, 남양만, 아산만, 천수만, 만경강 하구 등이 있으나 대부분 간척, 매립, 방조제 공사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어 이곳 강화도만이 유일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강화갯벌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등에서 유입된 토사가 쌓이면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양호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최대 8m에 이르는 조수간만의 차로 다양한 지형이 형성돼 종도 다양하다. 현재 갑각류와 연체동물 등을 포함해 270여종의 저서생물이 살고 있다. 종이 다양하면 생태계도 건강해지는 법이다. 한 종이 무너져도 먹이사슬 구조에서는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두루미는 낙곡을 먹지만 강화 두루미는 주로 칠게 갯지렁이 새우 망둥어 등을 주식으로 삼는다.
썰물 때면 육지에서 2~3㎞쯤 떨어진 갯벌에서는 조개와 낙지잡이에 열중하고 있는 어민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삽으로 갯벌을 파고 수확물을 담은 스티로폼 상자를 메고 뭍으로 나오는 어민들은 엉덩이까지 닿는 장화와 장갑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 어민에게 얼마나 잡았는지 묻자 그는 "4시간 동안 14마리 잡았다"며 상자를 들어 보인다.
육지화하는 지역 점점 늘어
하지만 최근엔 갯벌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육지에서 가까운 곳은 본래 발이 쑥쑥 빠지는 펄갯벌이 존재하고 멀어질수록 모래갯벌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최근에는 육지 쪽에서도 모래갯벌이 자주 발견된다. 영종도에 공항이 들어서고 나서 생긴 일이란다. 변화의 조짐은 또 있다. 육지 쪽에 갈대 숲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갯벌 곳곳에는 갈대가 듬성듬성 들어서 시야를 가렸다. 보통 밀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갈대가 자라는 것으로 볼 때 이 곳도 점점 육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김 센터장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힘들지만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화갯벌 전체면적은 105㎢로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남단갯벌이 전체의 86%를 차지한다. 희소성과 규모 때문에 강화갯벌은 2000년 7월 천연기념물 419호로 지정됐다. 국내에서 동식물이 아닌 갯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다. 면적이 4억4,800㎡에 달해 여의도 면적의 50배가 넘어 단일 문화재지정구역으로는 최대규모다.
갯벌은 생명체들의 서식지라는 중요성과 함께 수질과 토양 정화능력, 홍수방지 역할도 수행한다. 강을 통해 배출된 오염물질은 염생식물로 이뤄진 초지에서 걸러지고 갯벌의 세균과 식물, 다양한 생물들에 의해 섭취되고 분해된다. 갯벌이라는 공간은 영양염류를 흡수함으로써 부영영화를 막고 적조현상을 예방하기도 한다. 보통 갯벌 1㎢는 인구 10만명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논보다 10배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중한 자연자원인 갯벌에 대해 외국인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강화도에서 립?한 주민은 "외국인들이 갯벌을 보고 원더풀을 연발했다"며 "영종도에서 가까운 만큼 관광객을 유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강화조력발전소 "환경보존" "생태계 파괴" 논란
강화도에는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반면, 환경단체들은 갯벌 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와 국토해양부는 강화도와 교동도, 서검도, 석모도 등 4개 섬을 연장 7.79㎞의 방조제로 연결하는 강화조력발전소를 이르면 내년에 착공해 2016년 완공할 예정이다. 발전용량(840 메가와트)은 현재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보다 3.4배 크고, 태안군 가로림만에 추진중인 조력발전소(520 메가와트)보다 더 큰 규모다.
인천시는 이 발전소를 가동하면 연간 54만톤의 유연탄이나 22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사용을 대신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갯벌 일부가 피해를 볼 수도 있지만 환경오염 주범인 온실가스를 많이 줄여 결과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막아 갯벌을 살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조력발전 건설로 인한 갯벌파손과 생태계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바닷물을 인위적으로 가두기 때문에 해수흐름의 변화가 불가피하며 이를 통해 인근 지역의 갯벌이 훼손되거나 소실된다는 것이다. 염분농도가 바뀌는 등 수질이 악화되고 물고기 통로가 막혀 생태계 혼란도 우려된다.
갯벌의 주요기능인 홍수예방효과도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인천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강화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홍수기에 일부 지역에서 수위가 최대 68㎝ 상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한강과 임진강 상류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갯벌의 희소가치와 생태적 가치를 알리고 있는 강화갯벌센터의 김순래 센터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개념은 저탄소 개념에만 집중돼 있다"며 "강화도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최소 20% 이상의 갯벌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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