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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알다가도 모를 일

입력
2009.11.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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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에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책이나 전문가들로부터 배운 이론과 상식, 경험에 비추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럴듯한 해답을 더듬어 왔다. 행위 주체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행위의 실질적 동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종시 문제에 이르러서는 그 동기를 찾아내기 어렵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하는 일이라고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리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군의 치세도, 철인정치의 시대도 아닌 현재 대한민국의 일이다. 또 권력 주변의 일에는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는 게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세종시 건설을 위한 현재의 '행복도시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구상이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결정 벽에 가로막혀 우회하면서 태어난 변형이다. 충청권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이해 고려가 우선적으로 작용했다거나 한나라당의 소극적 입법 협력조차 정치적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한 법률이다.

기업과 국가 경영은 달라

그러나 현재의 실정법 체계에서 '출신 성분'을 이유로 헌재의 합헌 결정까지 난 법률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그것을 다른 법률로 대체하겠다면 그에 걸맞은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부는 '행복도시법'을 버려야 할 마땅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진정한 국가이익이 무엇인지, 어느 쪽이 효용이 큰지를 살펴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정운찬 총리의 이런 호소는 주류경제학, 아니 서구의 합리주의 전통에 충실한 그의 인식 틀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이 현실 사회에서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 총리가 누구보다도 잘 알 만하다. '합리적 선택'은 정확하고 빈틈없는 정보를 이성적으로 분석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그런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정보 수집 단계에서부터 이미 이성 외에 정서나 경험, 선입견 등 비합리적 요소에 크게 좌우된다.

더욱이 정치 행위는 '합리적 선택' 모델이 전제하는 분명한 목표와 확실한 조건, 완전한 정보와는 한참 동떨어진 다원적이고 상충하는 목표, 불확실한 상황, 불완전한 정보를 다루는 과정이다. 또 '합리적 선택'이 중시하는 '최적 대안' 실행 후의 평가와 그 피드백 과정조차 상정하기 어렵다. 적절한 평가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은 최소한 시장경쟁의 결과를 상대적 평가 잣대로 삼을 수 있지만 정치적 결단에는 그런 비교 대상도 없다.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방향이 맞으면 충분히 성공한 정책이 된다. 경부고속도로의 성패를 독일의 아우토반과 비교해 평가하거나 따로 경부고속도로 없는 한국을 만들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정치에서는 최선보다는 차선ㆍ차악을 겨냥하고, 다양한 이해의 조정과 타협을 소중히 여긴다. 엉뚱한 도구를 들이대며 세종시를 '기업중심 복합도시'로 바꾸겠다는 정 총리의 안간힘이 안쓰러울 정도다.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더욱 모를 일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당내 친박 세력의 반발과 반대가 불을 보는 듯한 상황에서 법 개정이 이만저만한 난제가 아님을 모를 까닭이 없다. 설사 이 정도로 반대가 심할 줄 몰랐다면, 서둘러 논란을 정리하면 그만일 텐데 그럴 기미도 없다. 현재 예산국회가 '4대강 사업'에 걸려 있지만, 세종시 문제도 그 정도 폭발력은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정권의 이해

다양한 정치적 동기가 거론되지만 이 대통령의 직접적 이해와 닿는 것은 없다. 흔히 거론되는 '박근혜 견제론'만 해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아직 박 전 대표와 체급이 다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나 정 총리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부터 작위적인 인상이 짙지만, 설사 성공해도 단임의 이 대통령이 얻을 간접적 이득에 비해 실패할 경우의 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사무사(思無邪)의 자세를 떠올리기에는 아직 세상은 혼탁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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