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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 허정헌기자의 '해 봤더니'- 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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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 허정헌기자의 '해 봤더니'- 승마

입력
2009.11.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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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 짜리 동전 두 배는 됨직한 큰 눈이 호박(보석의 일종)색으로 반짝였다.

난생 처음 말을 탄다고 콩닥거리며 흥분했던 기자의 심장은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을 보자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묘한 눈빛이었다.

'너를 내 마음대로 움직여 보겠다'는 치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잘 해 보자'고 부탁하는 심정으로 말의 목을 쓰다듬었다.

기자는 승마 체험을 위해 17일 오후 경기 하남시 미사동 조정경기장 뒤편 건국승마교육원을 찾았다. 말이라고는 그저 사극에 나오는 소품 정도로만 생각했던 기자. 말 옆에 서자 생각보다 육중한 체구에 주눅이 들었다.

체중 490㎏, 안장이 얹어진 등의 높이는 180㎝에 육박해 기자의 눈보다 한참 높았다. 말의 이름은 베누스(암컷). 2003년 3월생으로 6세다. 말이 평균 30년을 사니 사춘기인 셈이다.

사전 안전 교육은 간단했다. 말이 발길질을 할 수 있으니 말 뒤로 가지 말 것, 말이 놀라 흥분할 수 있으니 앞에서 급격한 손놀림을 피할 것. 두 가지가 전부였다. 이제 말에 오를 차례. 말 왼편에 서서 등자(발걸이)에 왼발을 걸었다.

등자 높이가 가슴께나 올라와 있어 쉽지는 않았다. 왼손으로 고삐와 갈기를 같이 움켜쥔 채 오른손으로 안장 뒤쪽을 잡고 끙끙대며 두어 차례 용을 쓴 뒤에나 올라탈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상쾌했다. 180㎝ 높이의 의자에 앉은 기분이랄까.

"허리를 세우고, 명치를 앞으로 내밉니다. 발 앞부분 3분의 1쯤을 등자에 걸고, 고삐를 쥔 손은 단전에서 20㎝쯤 앞에 두세요." 이종협 교관이 기관총 쏘듯 자세를 지적해 댔다.

허벅지에 힘을 줘 다리로 말을 움켜쥐듯 하는 것을 승마 용어로 기좌라고 한다. 승마의 기본이 이 기좌인데 고삐에 신경을 쓰면 다리 힘이 풀리고, 다리에 힘을 주면 지면과 수평이 돼야 하는 발바닥이 뒤나 앞으로 기울기 일쑤였다.

이 교관은 "기본 자세가 나오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습니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든 생각, '나폴레옹 같구먼, 너무 도도한 거 아냐.'

교관이 혀를 '쯧쯧' 차자 베누스가 걷기 시작했다. 혀 차는 소리는 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부조(扶助)' 중 하나다. 기좌와 고삐는 주로 쓴다고 해서 '주부조', 채찍 박차 소리는 보조로 쓴다고 해서 '부부조'라 부른다.

부조를 쓸 때는 짧고 단호하게 하는 게 포인트. 말의 지능은 3세 정도여서 상반된 부조로 고민하게 만들면 짜증을 부리기 십상이다. 기자도 말의 지능을 닮아가는지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발 뒤꿈치로 배를 차 앞으로 가자고 하면서 입으로는 멈추라고 '워워' 소리를 냈다.

다행히 기자를 태운 베누스는 온순한 편이어서 '푸르르' 입소리를 내는 것에 그쳤지만 성깔 있는 녀석을 만났더라면 바닥에 동댕이쳤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시속 6㎞의 속도로 지면이 서서히 뒤로 지나갔다. 말 걸음 가운데 가장 느린 평보다. 말이 오른발을 떼면 오른쪽 어깨가 내려가고, 왼발을 떼면 왼쪽 어깨가 내려갔다. 말 어깨와 기자의 엉덩이가 하나로 움직였다. 아다지오 리듬에 맞춰 댄스그룹 카라의 엉덩이춤을 추는 모양새였다.

교관이 다시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이 녀석 갑자기 뛴다. 평보의 두 배 속도, 속보다. 그런데 아까와는 리듬이 다르다. 좌우 어깨가 1초에 한 번씩 번갈아 꺼지는 게 평보의 느낌이라면 속보는 좌우 없이 초당 두세 번 빠르게 튀어 오르는 느낌이다.

평보에서는 오른쪽 뒷발, 같은 쪽 앞발, 왼쪽 뒷발, 같은 쪽 뒷발 순서로 네 다리가 하나씩 움직이는 '4절도'인데 속보는 대각선 방향의 앞발과 뒷발이 같이 움직이는 '2절도'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교관의 설명이었다.

통통 튀는 기분에 기자는 신이 났지만 말은 허리에 무리가 올 수 있단다. 말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는 경속보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도는 원을 기준으로 바깥쪽 발이 앞으로 나갈 때 허벅지에 힘을 줘 일어서고, 반대편 발이 앞으로 나갈 때 엉덩이를 살포시 대듯 가볍게 앉는 게 요령이다. 기자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어정쩡한 포즈로 일관하자 교관은 차라리 그냥 일어선 채로 타란다. 허벅지로 버티면서 무게 중심을 잡는 훈련이다.

그렇게 지름 10m 남짓 원형 트랙을 세 바퀴 돌았다. 다리에 줄기차게 힘을 썼더니 사타구니가 당기고,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잠깐 쉬자'고 말하려는 데 무심한 교관은 혀를 찼다. "다시 갑니다. 쯧쯧."

30분 간 원형 울타리가 쳐진 실내 마장에서 '뺑뺑이' 훈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길이 60m 폭 20m의 야외 마장이었다. 코스가 그려진 것도 아니고, 교관의 지시도 없었다. 그냥 말과 호흡을 맞춰 걸음마를 복습할 차례였다.

베누스는 실내에서는 검은 가라말로 보였지만 햇볕을 받자 붉은 기가 도는 월따말처럼 보였다. 늠름한 자태. 혀를 汰?녀석이 신난 듯 뛰기 시작했다. 서야 할 때 앉고 앉아야 할 때 서는 등 박자도 제대로 못 맞추는 기자를 태우고 초겨울 찬 바람을 갈랐다.

마장을 두 바퀴 숨가쁘게 돌던 베누스가 마사로 향하는 출구에 우뚝 멈춰 섰다.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워워'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도 녀석은 기자가 지친 것을 아는 듯했다.

내릴 때는 탈 때 동작의 역순. 왼손에 고삐와 갈기를 모두 쥐고 오른손은 안장 뒷부분을 잡은 채 일어서 오른발부터 내린다. 다 내릴 때까지 등좌에 걸린 왼발이 말을 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혹시라도 발 앞꿈치로 말 옆구리를 건드리면 말이 뛸 수도 있어서다.

별 탈 없이 승마 교육이 끝났다. 손으로 베누스의 목을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녀석은 수줍은 듯 고개를 기자 쪽으로 꼬면서 눈을 껌뻑였다. 베누스의 교태에 웃음이 절로 났다.

이 교관이 교육 시작부터 몇 번이나 강조했던 '말과 사람의 조화, 소통'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계가 아닌 생명체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다른 레포츠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 자폐·우울증 치료 효과승마클럽 전국에 50여곳…

"3년 전 친하게 지내던 언니와 옷을 사러 갔는데 백화점 직원이 저를 언니보다 더 늙게 보는 게예요. 그 언니가 젊게 사는 비결이 승마였답니다. 그날로 승마를 시작했죠."

조성옥 건국승마교육원장은 승마 예찬론자다. 승마가 왜 좋은지를 묻자 "자세 교정은 기본이고, 소화가 잘 된다. 특히 우울증 불면증 등 여성의 갱년기 증상이 없어진다"고 승마 예찬을 끝없이 이어갔다.

승마는 특히 자폐증, 뇌성마비 아동의 재활치료에 이용할 만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자폐증의 경우 동물과 교감을 통해 얻어지는 자신감으로 대인기피증이 나아지고, 큰 동물을 다루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10분에 약 500~1000회 정도 전후좌우, 상하 등으로 움직이면서 3차원적 신체 자극을 줘 뇌성마비 환자의 운동 능력과 균형 감각을 길러 준다.

조 원장은 올 여름 교육원을 찾은 28세 자폐증 환자를 예로 들면서 "처음에는 말 근처에도 못 가던 사람이 예닐곱 번 말을 탄 뒤에는 부모를 졸라 교육원에 온다"며 "다른 사람을 외면하던 태도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승마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전국승마연합회 소속 클럽만 50여곳에 달한다. 연합회 홈페이지(www.horse7330.or.kr) '승마 클럽/말 소개' 코너에서 지역별로 안내하고 있다.

교육은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는데 초급은 천천히 걷는 평보에서 빠르게 걷는 속보, 시속 19.2㎞ 이상으로 뛰는 구보를 배우는 과정이다. 중급 과정에서는 이를 숙달하고, 고급 과정에서는 걷고 뛰는 것을 반복하는 마장마술, 장애물을 뛰어넘는 비월 등 두 종목을 전문적으로 배운다.

하남시 미사동 건국승마교육원(www.kkhorse.kr)은 초급 과정의 경우 3개월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 2회 50분씩 교육받는 비용은 한 달에 50만원이다. 승마 체험은 30분이며 복장 대여료를 포함해 3만원이다.

말 안장과 고삐 등은 교육 기관에서 대여해 주지만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하려면 복장은 사야 한다. 말 안장과 접촉하는 허벅지 엉덩이 부분에 가죽을 덧댄 바지, 상의, 헬멧, 장화가 한 세트다.

가격은 세트당 30만원에서 100만원이지만 가격에 따른 기능 차이는 크지 않다. 50만원 전후면 쓸만한 장비를 살 수 있다. 조 원장은 "멋보다는 안전을 위해 복장을 갖춰 입는 것이니만큼 몸에 잘 맞는 개인 복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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