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수업료 냈습니다."
담담했다. 글로벌 기업과 2년 가까이 벌인 진검 승부에서 승리를 거둔 승장 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우리 회사가 경쟁 업체들에게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지불해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네요."
미국 최대 백색가전 업체인 월풀(2009년 상반기 매출 77억3,800만달러)과의 냉장고 특허 분쟁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고충곤(52) LG전자 특허센터 전문위원(상무)은 그 간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월풀은 2008년1월, LG전자 냉장고가 총 5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에 미국 내 판매 및 수입금지 소송을 냈다. LG전자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월풀은 지난해 9월까지, 4건은 취하했지만 '얼음저장 및 이송장치'관련 특허만큼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에 대해 올해 2월 ITC 판사는 'LG전자 냉장고가 월풀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ITC 위원회는 이례적으로 판사 결정을 번복하면서 재심 명령(2009년7월)을 내렸다.
"놀랐습니다. ITC 위원회가 판사 의견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없었거든요.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가 이런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 상무는 섬뜩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하지만, 석 달간의 재심 과정을 거친 ITC 판사는 결국, '침해가 아니다'는 판결(2009년10월)을 내렸고, 월풀의 청구 내용에 대해서도 '권리 무효'라고 밝혔다. 내년 2월 ITC 위원회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지만, 월풀의 특허 자체가 무효란 판결이 난 이상 두 회사의 이번 특허 분쟁 결과는 LG전자의 승리로 끝날 공산이 높아졌다.
고 상무는 "특허 소송은 법 문제만 잘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전문가급의 지식을 가져야 한다"며 "상대방이 꼼짝하지 못할 논리로 대응하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때문에 늘 공부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LG전자와 월풀이 벌인 특허 분쟁 소송 과정은 우리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송에서 패했다면 몇 년 동안 수출금지로 수 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LG전자의 처지가 결코 한 특정기업의 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 상무는 이번 과정을 겪으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얻은 교훈도 적지 않다. 갈수록 지적재산권이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제품만 잘 만든다고 해서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특허 소송만 전문적으로 하는 '특허 괴물' 기업까지 나타났잖아요. 이제 특허경영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될 것입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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