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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밥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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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밥맛

입력
2009.11.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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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이 말을 쓰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오래 전 대학에 다닐 때였다. 명동 입구에 모여 서 있던 여학생들이 소곤대는 소리를 들었다. "밥맛이야." 내게 한 말도 아니었는데 그처럼 모욕적인 말도 없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도 명색이 문학청년이라 비속어에 대한 거부감이 즉각 발동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외조부를 비롯한 일가 친척들 대부분이 쌀농사를 짓는 농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외조부는 자로 잰 듯한 분이었다. 허튼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땀을 흘린 만큼 되돌려주는 땅을 보면서 배운 정직함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고 철이 들 무렵까지도 콩 심은 데 날 게 콩밖에 없는 것처럼 갑갑한 노인이라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 밥맛이란 뭘까. 하루 중 한 끼 이상이 외식인 지금은 어느 식당에서 내는 공기밥이 값싼 쌀을 썼는지도 알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밥맛이란 곁들여 먹는 반찬 맛이라 생각했다.

쌀도 차별화를 꾀하고 제 이름을 따로 가지게 된 지 오래되었다. 쌀값 폭락으로 거리에 나온 농부들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니 외조부가 떠오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외조부도 살아 있었다면 좀 멍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밥맛이야'가 아니라 '밥맛없어'가 옳다. 아니꼽고 기가 차서 정이 떨어지거나 상대하기 싫다는, 형용사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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