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길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늘 그 마지막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그의 아시아 순방일정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벌써부터'빈손 귀국'가능성을 거론하며 순방 성과를 의문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맞아 북핵 문제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의 첫 방한에 거는 기대를 접을 수 없다.
오바마 亞순방 성과 시험대
오바마 대통령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아웅산 수키 여사의 석방 촉구 등 미얀마의 인권문제를 정상선언에 반영하지 못했고,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뚜렷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일본 방문에서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여전히 숙제로 남겼다. 요즘 부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미국 언론들의 혹평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아시아 순방 주요 의제 중 하나인 북핵 문제 논의 성과는 좀 달라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어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한 목소리로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항과 도발의 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 사이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서 "대항과 도발을 계속하면 번영하지 못할 것이고, 고립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 주석도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미중 양국은 이번 오바마 대통령 방중을 통해 세계에 G2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두 나라 정상이 북한을 향해 함께 내는 목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리 대화와 제재의 병행을 외쳐도 북한의 최대 지원국인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중국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미국과 행동을 같이 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어제 미중 양국 정상은 그 조건과 상황에 대해서 논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일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에 대해 일치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방미 때 제시한 그랜드 바겐안을 둘러싸고 한때 한미간에 엇박자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그랜드 바겐안과 오바마 정부의 포괄적 패키지는 사실상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이상 불협화음이 나올 이유가 없다. 과거의 단계적 대북 협상 방식이 원점으로 회귀를 거듭하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데 양국 정부의 생각은 일치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앞서 미 정부 당국자는 이 대통령의 대북 접근방식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중 정상에 이어 한미 정상이 북한에 6자회담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하는 것은 북미양자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될 게 틀림 없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포괄적 패키지 방안이나 일괄타결 방안의 구체화가 말처럼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수 십 년을 끌어온 북핵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허황된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북한이 협상에 참여한 뒤 빠져나갈 수 없는 틀, 천라지망(天羅地網)을 직조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 천라지망은 당근과 채찍을 교직해서 만들 수 있다. 당근의 핵심은 미국과 한국이 쥐고 있고 채찍의 관건은 중국이 쥐고 있다. 이 세 나라가 힘을 합쳐야만 북한의 핵 폐기와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있다.
한미중 당근ㆍ채찍 그물 짜야
물론 그 같은 천라지망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면 그 망에 끌어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원하는 국면이다. 그 그물망 속에서 김정일 체제가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천라지망의 힌트를 얻어 가기를 바란다.
이계성 논설위원.한반도 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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