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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밥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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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밥을 먹자

입력
2009.11.1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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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시어머님 생신 케이크는 생과일이 얹힌 생크림 케이크였다. 큰 초 일곱 개에 작은 초 여섯 개를 꽂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였다. 촛불을 끄려던 어머님이 뭔가 생각난 듯 가족을 둘러보았다. 무슨 중대한 발표라도 있는 것일까, 기대했는데 이젠 케이크도 '밀가리'로 만든 게 아니라 쌀로 만든 케이크를 사야 한다는 말씀이다.

시부모님은 오래 전부터 몇 마지기의 논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고 그 논에서 추수되는 쌀을 조금씩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쌀 한 가마니 시세가 작년보다도 2만원이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래서 우찌 농민들이 살아나가겠느냐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무래도 쌀 소비량이 주는 데 일조를 한 듯싶어 뜨끔하다. 평소에도 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밥보다는 빵이나 국수를 더 먹는 편이다. 특히나 국수는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을 것 같다.

스님들이 국수를 왜 승소(僧笑), 스님들의 미소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국수를 먹을 때면 저절로 그런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잖아도 쌀을 제과, 제빵에 이용하려는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는 모양이다. 떡의 경우 이에 달라붙고 끈적끈적해서 외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데 별안간 누군가 소리쳤다. "빨리 불 끄소!" 그제야 어머니는 부랴부랴 촛불을 껐다. 케이크는 붉고 푸른 촛농투성이가 된 뒤였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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