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증시에 거함(巨艦)이 출현한다. 삼성생명이다.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이자, 현존 최대 규모의 비상장사다. 규모 면에서 당분간 삼성생명을 능가할 기업공개(IPO)는 없을 것이 확실하다.
생보업계를 넘어 금융권에 몰고 올 판도변화도 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향후 그룹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거리다.
갑작스런 상장 추진, 속내는?
삼성생명은 최근까지도 "당분간 상장 계획은 없다"고 거듭 밝혀왔다. 사내에서도 극비리에 추진됐다는 후문. 당초 다음달 상장주간사 선정과 함께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금융당국 보고 과정에서 추진 사실이 새나가면서 공식 발표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이 공식적으로 밝힌 상장 배경은 자본건전성 강화. 2011년 도입될 국제회계기준이나 강화된 보험사 건전성 기준에 대비해 미리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2015년까지 글로벌 15위 생보사'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인수ㆍ합병을 통한 해외진출에 쓰일 '실탄'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외부의 해석은 다르다. 상장이 지연되면서 지루하게 끌어왔던 삼성자동차 채무 문제를 '이제는 해결할 때가 됐다'는 그룹 차원의 판단이 있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삼성은 1999년 6월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직후, 채권단 손실보전을 위해 이건희 전 회장 소유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주당 70만원에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다.
하지만 현금화의 통로인 상장이 계속 지연되자 채권단은 2005년12월 삼성차 부채 2조4,500억원과 연체이자를 포함해 총 4조7,380억원을 상환하라며 이 전 회장과 삼성 계열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이 채권단에 2조3,000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소송 계류중인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최근 삼성과 채권단에게 조정을 권고한 상태. 더구나 내년 초 법원 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되기 전까지 재판을 마칠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에겐 서둘러 부채상환자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담보가치(주당 70만원)보다 훨씬 낮은 최근 장외 주가나 거래가 쉽지 않은 비상장 주식의 한계를 감안하면, 상장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 지배구조에 영향 줄까
그 동안 삼성생명의 상장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맞물려 또 다른 주목을 받아 왔다. 삼성생명 상장이 삼성그룹을 금융계열사와 제조업계열사로 갈라놓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삼성생명 지분가치가 에버랜드 전체 자산의 50%를 초과)가 된다는 문제 때문에 상장을 추진할 수 없었다.
금융지주 자회사는 비금융회사를 거느릴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이 경우,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 특검'이후 이건희 전 회장이 차명 보유하던 삼성생명 지분을 실명전환하면서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에 오르자 에버랜드가 더 이상 이같은 규정을 적용받지 않게 된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도 "상장으로 (지배구조와 관련된 )상황이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장을 가로막던 제도적 걸림돌이 사라졌을 뿐, 상장 후에도 지금과 같은 순환출자 구조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융권 전반에 연쇄효과
당장 삼성생명 상장은 삼성생명이 글로벌 보험사로 도약하는 데 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으로 확충되는 자본은 그 동안 주춤했던 중국 등 해외시장 공략에도 쓰일 전망이어서 보험업계의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주들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경영 투명성과 효율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사용처 논란이 잦은 사업비의 경우도 곧바로 공시되고 감시된다면 더욱 알뜰하게 쓰여져 결국 보험계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또 향후 규제 추이에 따라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보험지주사로 뭉칠 가능성도 여전하다.
은행권과의 한판 대결도 관심이다. 삼성생명이 상장으로 덩치를 더욱 키우고 현재 논의중인 보험업법 개정 여부에 따라 장차 보험사에 지급결제 기능까지 더해지면 은행권은 그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은행들이 최근까지 보험사 지급결제 허용을 결사반대해 온 이유도 사?삼성생명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많다.
■ 삼성생명 주가 얼마나/ 잠재력·시너지효과 감안 '70만원+α'
상장 후 삼성생명은 과연 '황제주'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10년전 삼성그룹이 채권단에 제시했던 가격은 주당 70만원. 시간이 많이 흘렀고 계산방법에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잠재력이나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 등을 감안하면 70만원은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 솔로몬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내놓은 생명보험사 분석보고서를 통해 삼성생명의 적정주가를 77만원으로 제시했다. 2011년 예상 주당순자산(BPSㆍ48만9,260원)에 적정 주당순자산비율(PBR) 1.57배를 적용한 금액. 당시 보고서는 ▦국내 1위의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과 ▦특히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역할이 기대되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송인찬 애널리스트는 "현재 삼성그룹은 생명ㆍ화재ㆍ증권 및 카드 등 은행을 제외한 전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어 충분한 시너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달 초 50만원선을 밑돌던 삼성생명 장외 주가는 최근 급등세를 타기 시작, 상장계획이 발표된 16일 하루에만 22.69% 급등하며 65만5,000원을 기록했다.
삼성생명 상장은 증시의 판도 변화도 예고하고 있다. 공모가가 70만원이면, 추가 신주발행이 없어도 시가총액이 14조원에 이르러 시총랭킹 10위안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다만,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장을 추진중인 대한ㆍ미래에셋생명과 함께 공모 물량이 나온다면 증시에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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