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에 개의치 않고(We will not be cowed by threats), 행동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앞뒤는 이런 내용이다."북한의 핵 개발 등 대결노선에 맞서 유엔 안보리 결의 등 제재를 강화해 왔다…. 국제적 의무를 거부하면 북한의 안보는 오히려 더 불안해질 것이다".
아시아를 순방중인 오바마는 일본 도쿄 산토리 홀에서 아시아정책 기조를 소상하게 밝힌 연설을 했다. 북한관련 대목도 구체적이다. 북미 대치와 대화의 향방을 가늠하는 데 유용하다. 특히 우리사회가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데 도움될 듯하다.
'북핵 위협 개의치 않는다'
오바마의 발언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7월 "북한은 위협이 못 된다"고 말한 것과 닮았다. 클린턴은 북한 핵실험을'철부지들의 떼쓰기'에 빗댔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대화에 힘쓸 것이란 기대와 어긋나 '섣부른 실언' 이라는 추리가 뒤따랐다.
그 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과 김정일 면담을 계기로 '대북 대화 신드롬'이 나타났다. 이상 증후인 신드롬(Syndrome)이라 부른 것은 지레 북미 정상회담까지 거론하는 막연한 추측이 난무한 때문이다. 특히 북미 관계의 일대 전환을 점치며 우리 정부가 흐름을 놓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카산드라 식 예언, 정확히는 악담이 학자들의 말과 글에까지 넘쳤다.
이들은 오바마 연설을 어떻게 들었을까. 오바마는 대북 경고에 이어"북한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고 덧붙였다. 6자 회담에 복귀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면, 고립과 궁핍 대신 무역 투자 관광 등 경제적 기회와 안보가 보장되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고와 제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한 느낌이다.
우리 진보언론 등은 못마땅한 눈치다. 이에 비춰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곧 북한을 방문하면 다시'대화 신드롬'이 발현할 것이다. 마치 유신 시대 반체제 투사처럼 미국으로 달려가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한 이들은 새삼 미국을 본받으라고 목청 높일 듯하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부터 정확히 살피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지난 달, 미 콜럼비아대 동아시아 연구소와 미-한 연구소는 <미국의 대북전략> 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내놓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갈루치 대북협상대표의 수석보좌관 등을 지낸 조엘 위트가 대표 집필했다. 보고서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더러 혼란스러운 행보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미국의>
보고서는 효과적 대북 전략에는 단호한 조치와 진지한 대화의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안보 불안에서 비롯됐고 대미 불신이 깊기 때문에 협상을 통한 조기 비핵화는 어렵다. 따라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인식시키면서, 목표를 낮게 잡아 서서히 신뢰를 쌓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 2기 들어 비핵화 협상
을 서두르다 실패한 교훈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한 '압박과 대화' 전략
이 보고서는 중국의 지원 확대에 힘입은 북한이 경제적 유인에 호응할 가능성도 과거보다 낮다고 본다. 따라서 외교접촉 수준을 점차 높이는 등 북한이 가장 바라는 주권 존중자세를 보이는 것이 유용하다. 탐색적 대화로 신뢰를 구축하면서 경제개발 지원 등을 폭 넓게 논의하라는 권고다. 방대한 진단과 처방을 압축하면,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되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의 공식 행보와 물밑 움직임은 다를 것이다. 핵과 북한 문제에 미국과 우리의 이해가 같을 수도 없다. 그러나 북한 핵에 대처하는 효과적 전략은 논하지 않은 채 정부 비판에 매달리는 것은 어색하다. 정책에서 소외된 상실감을 그렇게 표출하기보다 조용히 남북의 앞날을 조망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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