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인플루엔자와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싸움이 만만치 않다. 내달 중순까지가 고비이다. 국내 신종플루 환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6개월 넘게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신종플루를 계기로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발등의 불'인 신종플루 외에도 영리의료법인이나 전문자격사 허용 등 핫 이슈,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진솔하면서도 거침없이 대답했다. 인터뷰는 12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복지부 장관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대담= 최진환 정책사회부장
-신종플루에 대한 국가전염병위기단계가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는데, 오히려 조용해진 분위기다. 심각단계 맞나?
"선제적으로 심각 단계의 조치들을 취해와서 그런 것 같다. 100% 이상 되던 가파른 증가세가 다소 완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12월 중순까지가 고비가 아닐까 싶다. 전 인구의 30%에 항체가 생기면 줄어든다고 하니까 한번 앓아서 항체가 생긴 사람, 단체 접종으로 생긴 사람들을 합치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한다."
-이미 선제적으로 조치들을 취했다면서 굳이 단계를 격상할 필요가 있었나. 여론에 떠밀린 정치적 결정 같은데.
"그건 아니다. 역대 계절인플루엔자 유행 최고치가 ILI(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유사환자 분율) 17.6이었는데, 신종플루가 20.29까지 올라갔다. 지난주에는 41.73까지 치솟았다. 국민들께 미리 그렇게 말씀 드릴 수는 없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17.6의 표준편차를 넘어서면 단계를 격상하기로 했었다. 일주일에 ILI 수치가 100% 이상 증가하는데, 이렇게 간다면 병실, 중환자실, 의사들이 모자라 동원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동원까지는 안 갔지만, 미리 법적 조치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체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신종플루는 전 세계적인 재난이다.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4월부터 공무원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지역사회 감염을 다른 국가보다 한두 달 늦췄다.
전염병 대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그러질 때까지 계속 범정부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후적으로 갖추어야 할 보건인프라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에 겪어보니 두 번째 대책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외국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비행기 타고 들어오는 사람 중 감염자는 신속하게 격리해야 하는데 격리시설이 없다. 내년에 인천공항에 그런 격리시설을 만들기 위해 겨우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국가지정 격리병원 5개에, 격리병상은 총 197개에 불과하다. 아직 예산 확보는 안됐지만 전국 각 지역에 평소에도 분리 진료와 입원이 가능한 500~600개 정도의 거점 의료기관을 갖출 것이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서 이런 인프라를 조속히 구축할 것이다. 백신을 조기에 준비를 했으니까 다행이었지, 백신공장이 없었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백신생산체계도 갖춰야 한다."
-영리의료법인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용역보고서 결과가 최근 논란이 됐다. 복지부가 연구 보완 지시를 내렸는데, 도입을 전제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기 위한 것 같은 인상이다.
"어떤 예단도 갖지 않고 있다. 보완책이 충분하고 이점이 많다면 도입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면 충분히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는가 등을 보고 결정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려 쪽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고 있다. 우려를 해소할 만한 보완책이 없다면 복지부 장관 입장에서 따를 수 없다."
-독하게 반대할 작정이 돼 있나?
"순하게 얘기하면서 일관성을 지켜가겠다(웃음). 된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비급여에 대한 보충형으로서의 민영의료보험, 비영리법인의 영리의료법인 전환 금지 등 3가지 조건은 모두 지켜져야 한다.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되면 단기간에 의사가 양성 안되니까 지방 의사들을 서울로 불러 올릴 테고, 그러면 지방 의료는 점점 부실해진다. 의료 사각지대가 생기면 결국 국가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런 우려들을 씻을 만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허용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자격사 규제완화에 관한 입장은?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허용(OTC)은 현재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 일부 허용되고 있다. 약국이 별로 없는 지역인데, 대도시는 제한하고 있다.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그렇다면 슈퍼보다 약국이 많은 나라에서 OTC의 실익이 뭐냐, OTC 대도시 허용은 소극적 입장이다. 또 약사들이 피부미용사 일을 하고 싶으면 자격을 따면 된다. 따는 게 어렵지도 않은데 왜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까지 허용해 줘야 하나."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실적이 어느 정도인가?
"의약품종합유통관리센터를 중심으로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은 초창기라서 단속은 많지 않다. 실시간 보고가 아닌 게 문제다. 한 달에 한 번 보고하니까 다들 조작한다. 태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금년 중에 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상벌제 도입해 받는 사람도 처벌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검찰과 협의해서 전담 검사를 두는 방안 등 백방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안돼 여성들이 출산을 꺼린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묘안이 있나.
"정부와 기업과 국민 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과감하게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 재정의 한계 내에서 조금씩 늘리니까 가뭄에 빗방울 한두 개 떨어지는 것처럼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터에서 아이를 갖는 게 불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기업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회사에 출산휴가 간 사람이 너무 많아 큰일'이라고 한다. 불편하다는 얘기다. 출산이 줄어들면 기업들은 물건 팔 곳이 없다. 아기들과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소비수요가 엄청나다. 그런 관점에서 기업이 10년 앞을 내다보고 불편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세 번째로 국민들의 행복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애기를 낳으면 일등으로 키우려고만 하지 아이 키우는 즐거움은 소홀히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여자로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행복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어떤가? 보험료는 인상할 계획인가?
"현재는 괜찮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노령화로 접어든 시기를 대비해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활동은 많이 하는데 애는 안 낳고 노인도 아직 안 됐다. 노인들이 진료비로 젊은 세대의 3배를 쓴다. 이걸 줄여야 한다. 내년에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해마다 진료비가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가고, 새로운 질병이 생기면 새로운 장비도 나온다. 올해는 경제위기 때문에 동결했지만 내년에 또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재임한 지 1년 3개월이 됐다. 보람을 느끼거나 스스로 업적으로 꼽는 것은 무엇인가?
"저출산 문제를 꼽고 싶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까지는 성공했다고 본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은 없었다. 지금은 대통령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고, 지자체도 다양한 정책으로 호응하고 있다."
● 전재희는
공직사회 '여성1호' 줄기록… 논리·배짱 두둑한 '뚝심 장관'
전재희(60)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강한 뚝심으로 유명하다. 여간 해서는 어느 누구와의 논리와 배짱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지난 4월 기획재정부가 영리의료법인 허가를 밀어 부치자 전 장관은"최종 결정은 복지부 장관이 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또 지난해에는 금융위원회가 건강보험공단에 진료사실 확인 요청권을 부여하기 위해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전 장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복지부와 산하집단의 이익만을 챙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복지부 직원들에게는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1973년 한국 최초의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로 화려하게 공직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전 장관은 92년 중앙부처 첫 여성국장 기록을 세웠다. 94년 여성 최초 관선시장으로 경기 광명시장에 임명된 그는 이듬해 지방선거에 출마, 첫 여성 민선시장으로 선출됐다.
제 16회 국회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임기 중 사퇴하고 광명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에 재입성,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다. 18대까지 내리 당선된 3선 의원으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복지, 교육분야 대선 공약을 만들었다.
정리=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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