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래' 하면 포구와 염전이 떠오른다. 포구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염전은 1996년 문을 닫았다. 이 염전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운영되며 한때 국내 소금생산량의 30%를 생산했던 곳이다. 이후 염전부지 주변은 아파트 숲이 들어섰다.
염전과 역사를 같이 했던 2차선 도로는 8차선으로 확장됐다. 제3경인고속도로 건설도 한창이다. 주변환경만 보면 염전부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 밀려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곳은 옛 모습 그대로 용케 살아남아 해수와 담수가 교차하는 생태공원으로 태어났다.
축구자 212개 크기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래습지생태공원은 면적이 156만1000m²에 달한다. 축구장 212개를 합쳐놓은 크기로 78만5000㎡의 폐염전과 77만6000㎡의 갯벌 등을 활용해 조성됐다. 공원을 조성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염전을 덮고 있던 타일을 걷어내고 산책길과 데크, 전망대를 설치했을 뿐이다. 드넓은 갯벌과 갈대 숲은 관리되고 있다기보다 방치돼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안 총장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 곳의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공원을 조성했다기보다 보존했다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보존이 잘 됐다는 점은 쉽게 확인됐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해당화가 늘어서 있다. 염기를 잘 견뎌 바닷가 주변에서도 잘 자라는 몇 안 되는 식물이다. 갯벌은 온통 구멍천지다. 게들이 뚫어놓은 것이다. 붉은 색을 띤 농게, 그 중에서도 수놈은 집게발이 자기 몸보다 더 커 기형적으로 생겼다.
갯벌에는 현재 13종의 게들이 서식하고 있다. 갯벌을 덮고 있는 건 칠면초다. 갯벌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염생식물로 이 곳 갯벌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칠면초는 게들의 짝짓기 도구로도 활용된다. 매년 5월이면 칠면초 가지에 수놈 게가 매달려 몸을 흔든다. 그네 뛰는 모습과 흡사한데 몸을 사리지 않는 수놈의 구애를 암놈은 결국 받아들인다.
갯벌 가운데 나있는 물길인 갯골은 새들의 보금자리다. 괭이갈매기와 청둥오리, 백로 등 수천 마리의 새들이 갯골에서 잠을 청한다. 안 총장은 "갯벌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갯골은 생명체들의 통로이자 젖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장소"라고 지적했다.
이 곳에는 현재 환경부보호대상종인 말똥가리를 비롯해 조류 31종과 양서ㆍ파충류 35종이 살고 있다. 아직도 땅에 남아있는 소금기 때문에 칠면초와 퉁퉁마디 등 30여 종의 염생식물도 자라고 있다. 안 총장은 "도심 한복판에 갯골이 존재하고 바닷물이 도심 깊숙이 들어오는 곳은 이 곳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담수와 해수 섞이는 생태교차점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생태 교차점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섞여있는 강 하구에서 소금의 양이 바닷물보다 적은 물을 기수(汽水)라고 부른다. 담수와 해수가 섞여 만들어낸 물이다.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역에 큰 어장이 형성되듯 기수에도 물고기와 새들이 풍부하다.
염전이 문을 닫은 뒤 이곳에는 다양한 염생식물과 철새ㆍ갯벌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갯벌로 탈바꿈했다. 갈대 숲이 우거진 정화습지, 철새와 민물어류가 서식하는 담수습지, 염생식물이 자라는 염생습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기수습지 등 자기만의 특색을 지닌 4개의 습지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공원 북쪽은 장아산과 오봉산이 연결돼 있어 육상생태와 해양생태가 교차한다. 또 장수천과 신천이 갯골과 습지로 흘러 들어 담수와 해수가 섞인다. 따라서 생태계의 천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관찰된다. 담수와 기수 사이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기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은 부들이 차지하고 있다. 해수의 영향에 있는 갯벌에는 칠면초가 많다. 칠면초가 보이다가 어느새 갈대가 보이는 풍경은 이곳에선 낯설지 않다.
갈대 숲은 개개비 소리로 시끄럽고, 칠면초 지대는 갈매기 날개 짓으로 자주 흔들린다. 수심이 얕은 민물에는 작은 새가 터를 잡았고, 좀 더 깊은 기수에는 큰 새들이 모여있다. 갈매기와 가창오리의 군무를 지켜본 안 총장은 "새들이 예전보다 확실히 많이 늘었다"고 만족해했다.
옥의 티라고 할까. 부분적인 문제도 있었다. 생태견학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데크가 많아 동식물 서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 서주원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안쪽에까지 길이 뚫려 있어서 사람들 때문에 새들이 놀랄 가능성이 있다"며 "가능한 데크를 줄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사진=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 생태공원 조성 주역 안경수·김진택
"소래 염전을 습지생태공원으로 보존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안경수(60) 인천대 총장과 김진택 인천시 공보관은 수도권 유일의 해양생태공원 조성의 결정적인 기여자다. 개발바람이 거세게 불던 1990년대 초반 방치된 폐염전 부지를 활용한 각종 개발계획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 골프장이나 체육시설 건립 요청도 있었고 남동공단과 가까우니 공단을 조성하자거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1995년 인천 남동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공보실장으로 있던 김 공보관은 이 과정에서 보존을 강력히 주장했다. 폐염전 부지와 인근 갯벌에는 갯골과 습지, 갈대가 무성해 그 자체로 충분한 보존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도시 한복판에 담수와 해수 생태환경을 동시에 갖춘 곳은 소래지역이 유일했다.
40년 이상 인천에 살며 소래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알고 있었던 김 공보관은 결국 95년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래습지생태공원 조성계획을 최초로 마련해 구청의 승인을 받았다. 사유지인 폐염전 부지와 해양수산부 관할인 갯벌을 하나로 묶어 그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보존하자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반대가 심했다. "당시엔 생태공원이란 개념조차 생소했어요. 그 넓은 땅을 개발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짓 하는 거냐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죠."
김 공보관은 당시 인천대 토목공학과 교수였던 안 총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안 총장도 기꺼이 자문역할을 맡았다. 안 총장은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생태문제에 관심도 많았다. 전체적인 공원 디자인도 안 총장의 구상대로 이뤄졌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입수한 습지와 갯벌 보존의 논리도 김 공보관에게 제공했다.
"토목공학에서는 물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 습지의 성격 등 물과 관련된 정교한 구상이 밑바탕이 돼야 합니다."
그는 해양수산부에도 보존 필요성을 역설했다. 해수부는 당시 갯벌과 바다를 매립해 땅만 만든다는 비판을 받던 시기였다. 해수부에 소래습지의 보존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한 결과 결국 96년 연안보존사업 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안 총장은 2003년부터 습지학회회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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