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농사는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문제.'
올해 쌀농사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대풍작을 거뒀다. 하지만 정작 농민과 정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쌀 소비량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과 재고 처리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쌀 수확량은 491만6,000톤으로, 풍작을 거둔 지난해(484만3,000톤)보다도 7만톤 이상 많다.
특히 평년 수확량(456만5000톤)과 비교해도 35만1000톤(7.7%)이나 더 많고, 9월 15일 정부가 예상한 올해 쌀 수확량(468만2,000톤)보다도 23만4,000톤이나 늘어난 규모다. 예상보다 쌀 수확이 늘어나면서 쌀 가격 하락 등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 달 5일 현재 산지 쌀값은 80㎏당 14만2,43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하락했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는 일단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이 생산된 올해 수확한 쌀 23만톤을 전량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애초 격리시키기로 한 물량 11만톤과 합치면 시장 격리 물량은 34만톤에 달한다. 여기에 올해 사들이기로 한 공공비축 미곡 37만톤까지 합치면 사실상 정부가 사들이게 될 물량이 71만톤에 이른다.
정부가 올해 예상한 양곡연도 말(10월 말) 기준 쌀 재고량이 82만톤임을 감안하면 정부가 보관해야 하는 쌀은 150만톤이 넘는다.
이에 따라 쌀농사가 잘 되면 농민과 정부가 고민하고, 흉작이 들면 농민과 소비자가 힘들어지는 '쌀농사의 딜레마'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쌀 재고가 매년 늘어나면서 보관 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0월 현재 쌀 재고물량 81만6,000톤에 대한 재고 비용이 2,500억원 가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내년엔 올해보다 두 배 가량 많은 5,000억원 가량이 들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쌀을 쌓아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0만 톤 당 평균 313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소비를 늘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 정부가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다양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2002년부터 연간 40만~50만톤 수준의 쌀이 대북 지원용으로 소비되다 지난해부터 끊겼다. 2000년 1인당 93.6㎏이던 연간 쌀 소비량도 해마다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75.8㎏으로 줄어 드는 등 꾸준한 소비 감소로 쌀 재고 처리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원산지 표시를 모든 식당과 모든 쌀 가공식품으로 확대하는 등 국산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며 "쌀의 공급 과잉이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은 만큼 벼 농가가 다른 작물을 심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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