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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플레이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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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플레이보이

입력
2009.11.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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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성용 잡지의 대명사 <플레이보이> 가 매각 위기에 놓였다. '런던포그' '캔디스' 등 유명 의류브랜드를 소유한 아이코닉스 그룹이 최근 1년 동안 플레이보이 인수 협상을 벌여왔다고 한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의 누드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성인 잡지다. 전성기인 1970년 대만 해도 월 700만부가 팔려나갔으나, 올해 상반기 월평균 판매부수는 245만부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9.2%나 줄어든 것이다. 잡지 외에 플레이보이의 마스코트인 토끼 복장의 '바니걸(Bunny Girl)' 로고의 라이선스 수입도 14%나 줄었다.

▦ 플레이보이는 1953년 <에스콰이어> 지의 카피라이터 휴 헤프너가 창간했다. 그는 일찍이 누드사진의 상업적 효용가치에 눈을 떴다. 사진작가 톰 켈리가 찍은 마를린 먼로의 누드사진을 전 재산 600달러를 투자해 입수한 것도 그의 사업가적 기질을 잘 보여준다. 44쪽 분량의 창간호는 마를린 먼로의 핀업(Pin-up) 사진 덕분에 5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대성공을 거뒀다. 플레이보이는 관음증의 세계에 머물던 여체를 예술에 가까운 세련된 누드사진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보수적인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던 50년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 첫 시련은 1963년에 찾아왔다. FBI가 포르노물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자, 헤프너는 플레이보이 2월호에 FBI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가 외설물 관련법 위반혐의로 체포된다. 플레이보이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지식인들을 활용한 고급화 전략이었다. 플레이보이는 누드사진 사이사이에 시사 칼럼과 소설, 명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 등 시대적으로 첨예한 논쟁을 다루기 시작했다. 아서 클라크 등 유명 작가들의 칼럼과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과의 인터뷰는 플레이보이 구매 남성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정당성을 부여했다.

▦ 플레이보이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데 대해 <맥심> 등 경쟁 남성지의 시장 잠식과 경제위기에 따른 광고 급감, 헤프너의 문란한 사생활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역시 인터넷 성인사이트의 범람이다. 성 묘사가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온갖 영상물이 인터넷과 TV에 넘쳐나는 이 시대에 누드사진이 설 자리는 좁을 수밖에 없다. 누가 볼까 두려워 가슴 졸이며 플레이보이를 몰래 훔쳐보던 경험은 70,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에겐 통과의례와 같았다. 야동에 물든 요즘 청소년이 그 시절의 낭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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