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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겨울, 점점 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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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겨울, 점점 여리게

입력
2009.11.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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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밑에 매달린 고드름들 사이로,

흐린 하늘에 목매달아 죽은 가오리연을 본다

하늘을 휘젓는 연의 시체는 부드럽다

까만 바람, 겨울은 낙타를 타고 걷는다

이따금 방바닥에 흩어진

겨울의 부러진 발톱을 몰래 줍는다

주워들고는 죽은 구상나무 뿌리에 기우뚱 심어놓는다

구상나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하게 죽어 있다

뿌리에서 또 다른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죽은 몸과 자라나는 슬픔 사이의 여백이 차갑다

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다

내 발가락 사이사이 틈

꼬아진 다리 사이

멀리 돌아온 입술과 입술의 포개짐에도

서글픈 여백이 맺히고,

갈변한 사과를 반으로 쪼개면

속살은 여전히, 잊혀진 듯 희다.

● 11월 초,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나갔더니 이마에 땀이 맺혔습니다. "그건 좀 더 추워진 다음에야 입어야죠"라는 충고를 들었어요. 그건 환절기의 충고랄까요. 그리고 며칠이 흐른 뒤. 한낮에 다시 그 점퍼를 입고 나갔는데, 따뜻하다는 느낌. 이렇게 따뜻하다는 느낌이라면 지금 겨울이 시작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이 나라의 모든 나뭇잎들은 떨어져야만 할 텐데, 아직도 잎이 붉은 나무가 동네에도 수십 그루. 그럼 저 붉은 잎들은 봄으로 떠나버린 애인이 보낸 오래 전의 편지 같은 것일까요? 어쩐지 가을은 다 지나갔는데도 아직 겨울은 오지 않은 듯한, 그런 이상한 계절의 느낌. 사과 하나를 다 먹지 못하고 그만 내려놓을 때의, 뭐, 그런 느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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