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보세요. 근엄한 표정만 짓던 이 양반이 얼마나 기뻤으면 이런 환한 표정을 지었겠습니까?"
박원훈(69)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은 요즘 기분이 아주 좋다. 얼마 전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내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나서자 '독재자 박정희'를 그렇게까지 '모셔야'하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계획을 공개하자 기업들은 물론이고 최근엔 "동상 건립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일반인들의 문의까지 쇄도하고 있다. "KIST 출신 과학자들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 뿌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박 부원장은 14일 경기 분당구 구미동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집무실에서 컴퓨터 화상을 통해 1969년 10월23일에 촬영된 빛 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이날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완공식 행사장을 박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함께 방문한 사진이었다. 최형섭(1920~2004) KIST 초대 원장이 박 대통령 내외를 안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만면에 가득 만족감을 담아 밝게 웃고 있다.
앞서 65년 박 대통령은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1,000만달러를 원조받자 한국의 과학기술개발을 총괄하는 국책종합연구기관 설립에 착수했다. 미국의 한국군 월남전 파병 요청을 받아들인 대가로 얻어낸 '피와 맞바꾼 돈'이었다.
국민의 상당수가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 거액의 자금이 소진되는 KIST 설립은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KIST는 1966년 2월10일 설립됐고, 연구소 건물 완공은 1969년에 이뤄졌다.
"연구소 건물을 짓는 동안 박 대통령은 비밀리에 공사 현장을 여러 번 들렀습니다. '내가 온 것이 알려지면 연구원들이 연구하는데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관계자들에게 당부했지요. 또, 건설 인력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으면 곧바로 군 공병 부대를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박 부원장은 72년 KIST에 합류했다. 미국 휴스턴대에서 포닥(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가 박 대통령의 '해외 한국 인재를 불러 들여라'는 지시에 포착된 것이다. 박 부원장은 서울고에서 1등을 독차지했고 당시 최고 인기학과인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는 박원훈, 경기고는 이태섭(70ㆍ전 국제라이온스클럽회장)'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화공과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박 부원장은 1996~99년 3년 동안 16대 KIST 원장을 지냈다.
"KIST에 왔더니 월급이 서울대 교수의 세배더군요. 여기에다 아파트가 제공되는 등 대우가 파격적이었습니다. KIST 연구원은 단연 최고 신랑감이었지요."
그는 "이런 파격적인 대우 덕분에 KIST 행정직에 서울대 법대 출신도 아주 많았다"며 "요즘 박정희 동상 건립에 관련된 법률적 사안을 처리하면서 이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원장 등의 박정희 추모계획은 우선 KIST 내에 대지 2,128㎡,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의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고,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달 말 KIST 존슨강당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설립 추진 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정식 활동에 들어갔다. 이달 중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모금에 나서고, 다음달에는 공식 홈페이지도 개설한다.
그는 "2010년까지 우선 10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일반인들의 호응이 의외로 높아 국민모금을 벌이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KIST를 설립했고, KIST가 오늘의 한국의 토대를 닦았다"며 "KIST 설립자인 박 대통령의 동상이 아직까지 KIST에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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