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돈을 더 벌고 싶어하지 않는 게 죄인가요."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 6개월을 맞아 본보가 기획한 의료 관광 점검 시리즈 '의료 한류로 가는 길'(9ㆍ10ㆍ12일자)에 대한 한 병원 관계자의 반응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죄가 맞다. 바로 직무 태만이다.
주요 의료 기관 7곳이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이 본격화한 5월부터 9월까지 진료한 외국인은 1만2,977명으로 지난해 대비 29.8% 증가했다. 꽤 괜찮은 실적이다. 그러나 아직 강 건너 불구경하는 대형 병원들도 많다. 공공연히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시설과 기술을 보유했다'고 밝히던 A대학병원 관계자는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준비 상황을 묻자 "솔직히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별로 하고 있는 게 없다"며 "다른 병원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상당수 대형 병원들은 외국인 환자가 들이닥친다고 하면 다른 병원들이 해당 질환 치료에 얼마를 받았는지, 환자의 지불 능력은 어떤지까지 눈치를 보면서 가격을 결정한다. 줏대도, 자부심도 찾기 어렵다.
수년 전부터 전 세계 수십 개 나라를 돌며 자비로 설명회를 하고 있는 한 성형외과 원장은 "소위 대형 병원이라면서 선도 주자들이 노하우나 전수해 주길 기다리는 거 아니냐"며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심보를 꼬집었다.
동네 작은 병원들까지 외국인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들먹였던 병원들이라면 마땅히 외국인 환자 맞이의 선봉에 서야 한다. 외국인 환자를 통한 경제적 이익도 이익이지만 외국인을 대하면서 더 친절해지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의료의 질을 높인다면 국내 환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노하우는 남지 않겠느냐"는 한 병원장의 충고를 잘 새겼으면 한다.
허정헌 생활과학부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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