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프랑스대사관 움직인 어느 외고생의 편지 "입시용 말고 살아 있는 불어 배웠으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프랑스대사관 움직인 어느 외고생의 편지 "입시용 말고 살아 있는 불어 배웠으면…"

입력
2009.11.12 23:38
0 0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

올해 1월 겨울방학 때 프랑스 파리에서 한 달간 홀로 머물렀던 명덕외고 2학년 황윤주(18)양이 귀국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삼키며 되새긴 다짐이었다. 학교에서 1년간 프랑스어를 배워 혼자서도 잘 지내리라 자신했지만, 프랑스 체류는 악몽 같은 생활로 허무하게 끝났다.

"인사부터 어려웠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봉주르'라는 인사말을 프랑스 사람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거예요. 약어는 또 얼마나 많던지…." 매일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는커녕, 인사조차 하기 힘들었던 탓에 혼자 공원이나 박물관 등만 돌다 집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TV를 켜도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해 홀로 버려진 것만 같았다. "불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예절이나 사고방식 등도 거의 몰라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참담했던 그 경험이 오히려 공부에 대한 갈증을 키웠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황양은 서울 시내 프랑스어학원, 온라인 사이트, 교재 등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또 한 번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기초 회화부터 프랑스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교육을 받고 싶었지만, 대부분 입시나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을 위한 강의나 교재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프랑스어가 예전과 달리 비인기 제2외국어가 되다 보니 교육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예전 고등학생들은 제2 외국어로 대부분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택했지만, 2009년 기준 서울시내 전체 308개 고교 중 프랑스어 강좌를 개설한 학교는 52곳뿐이다.

황양이 궁리 끝에 주한 프랑스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8월 프레데리크 페닐라 주한 프랑스대사관 불어교육협력 담당관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서툰 프랑스어로 쓴 메일이었지만, 황양은 "입시용이 아니라 프랑스에 가서도 통하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며 "즐겁게 프랑스어를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생 모임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열정을 담아 제안했다.

페닐라 담당관은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 관리를 맡고 있는 터라 종종 학생들로부터 시험성적에 관한 항의나 문의를 받곤 했는데 황양의 메일을 받고서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황양의 편지가 결국 프랑스문화원을 움직였다. 문화원은 고등학생 모임 장소 제공뿐 아니라 다양한 프랑스어 자료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선생님까지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황양은 곧 학교 홈페이지의 공고를 내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또래 친구들을 모았고, 모임 홈페이지도 직접 준비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이트에 수록할 프랑스어 관련 자료를 준비하느라 지난 여름부터 매일 1시간 이상을 쏟아 부었어요"

이런 노력이 12일 첫 결실을 맺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봉래동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첫 모임에는 고등학교 1ㆍ2학년생 70명이 참석했다. 모임 이름은 '모두 함께'라는 뜻의 '뚜스 앙상블'( Tous Ensemble). 모임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도 황양과 같이 입시 위주식 교육에 불만이 쌓였던 참이었다.

김태훈(18)군은 "학교 불어 수업은 일주일에 문법 4시간, 회화 2시간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대부분 암기나 주입식으로 이뤄진다"고 했고, 박세일(18)군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실질적인 불어를 배우기 어렵고 프랑스 문화에 대한 교육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윤정민(17)양은 "이번 모임이 교과서 위주의 학교 수업보다 훨씬 유익할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모임 회원들은 지금은 주로 명덕외고 학생들이지만, 홈페이지를 통해서 불어를 공부하는 다른 모든 고등학생들과 함께 프랑스어 학습자료를 공유하고 프랑스 문학 작품을 읽고 토론하면서 모임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활동을 하면서도 프랑스 현지 고등학생들과의 교류, 프랑스어 전공 선배와의 만남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로르 쿠드레 로 프랑스문화원장은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프랑스어 교육은 대부분 자격증이나 언어시험에 국한돼 있다"며 "프랑스 문화와 역사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강조했다. 황양은 "이 모임이 고등학생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고, 또 즐겁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김현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