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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유전자라 부르지마 엄연한 이름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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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유전자라 부르지마 엄연한 이름이 있다고!

입력
2009.11.1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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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을 무겁게 해 아무렇게나 굴려도 바로 일어서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오뚝이'를 국어사전에선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식품업체 '오뚜기'도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 장난감과 식품 업체 말고 과학계에서도 이 이름이 곧 등장할 예정이다. 국내 연구진이 새롭게 발견한 유전자에 '오뚝이(ottogi)'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난 유전자 이름들

김철희 충남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열대어 제브라피쉬를 연구하다가 최근 독특한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가 작동하면 발생 초기 제브라피쉬 유생의 몸 아래쪽이 둥글 뭉툭한 오뚝이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착안해 김 교수팀은 이 유전자를 오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뚝이 유전자는 암과 치매를 일으키는 복잡한 메커니즘에 관여할 것으로 연구팀은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유전자가 당장 외국에서도 오뚝이라고 불리는 건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하듯 유전자 이름도 공식 신고 절차가 필요하다.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다. 김 교수팀은 오뚝이 유전자의 이름과 기능을 학계에 알리기 위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유전자의 이름을 짓는 건 보통 처음 발견한 과학자의 몫이다. 수많은 연구실에서 개별적으로 명명되다 보니 별난 이름을 가진 유전자도 많다. 발견한 과학자의 철학이 담겨 있는 이름도 있고, 영화 주인공의 이름을 본뜬 유전자도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 중국인 과학자 리쿤 루오 박사는 세포의 형태를 지탱해 주는 유전자를 '징기스칸(genghis khan)'이라고 이름 붙였다.

유전자의 기능이 민족 영웅의 업적과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각각 발견된 '카사노바(casanova)'와 '돈 주앙(don juan)' 유전자는 모두 생식기능과 불임에 관련돼 있다.

유전자 작명의 규칙

과학자들 사이에도 유전자 명명에 관한 '무언의 규칙'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규칙은 유전자의 표현형을 근거로 이름을 짓는 방법. 표현형은 생물체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특성을 말한다.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발생시켜 기능을 못 하게 만든 다음, 생물체에 나타나는 표현형을 확인해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조경상 건국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초파리에서 특정 유전자를 없애면 다음 세대에 날개가 없는 초파리가 태어난다"며 "이 유전자는 '윙리스(wingless)'라고 불린다"고 설명했다.

기능과 별개로 연구 방법에 착안하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팀은 제브라피쉬의 유전자 가운데 사람 유전자와 같은 걸 찾으면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인다.

지금까지 2,500개를 찾았는데 그 중 1004번째 유전자가 소리를 듣거나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김 교수는 "이 유전자를 찾은 순서에 따라 '천사(cheonsa)'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방식으로 명명하다 보니 어떤 유전자는 이름이 여러 개가 되기도 한다. 논문을 먼저 발표한 과학자가 명명에 우선권을 갖는 게 과학계의 관례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과학자가 모든 논문을 일일이 확인할 순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유전자가 알고 보니 같은 기능을 하는 동일한 유전자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름 논란 중재자

이 같은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모여 조직한 인간게놈위원회(HUGO) 산하에는 유전자명명법위원회(HGNC)가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HGNC 회의에서는 유전자의 이름을 통일하는 작업을 한다. 어떤 이름이 먼저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는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됐다면 연구자들이 어떤 이름을 더 선호하는지를 중점적으로 고려한다.

이름을 둘러싼 논란의 중재자 역할도 한다. 미국 슬로안케터링암센터 연구팀은 쥐에서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해 '포케몬(pokemon)'이라고 명명했다.

기능을 뜻하는 영문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니 일본 만화 캐릭터와 이름이 같아진 것. 포케몬 제작사 닌텐도는 회사 이미지에 안 좋다며 항의했고, HGNC 는 연구팀에 개명을 권했다. 결국 이 유전자는 'zbtb7a'라고 불리게 됐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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