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문'은 한국의 홍상수,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감독이 각각 연출한 단편 3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매년 제작하는 '디지털 삼인삼색'의 올해 작품으로, '우연한 만남과 필연적 사건'이라는 주제를 세 감독이 저마다 개성있게 변주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코마'는 아름답고 감성적인 작품이다. 재일동포 3세 남자(기타무라 가즈키)가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코마라는 작은 마을에 갔다가 한 일본 여자(나카무라 유코)를 만나 미묘한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1박 2일의 짧은 방문 동안 그런 마술을 일으킨 것은 마을을 둘러싼 미와산의 신령스런 기운과, 할아버지가 돌려주라고 한 옛날 족자에 얽힌 한일 고대사의 오랜 인연이다.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 전통극 '노(能)'의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풍광에 녹아들어 아련하고 애틋한 색채를 더한다. 가와세 나오미는 서정적인 영상과 섬세한 연출로 유명한 여성 감독. 1997년 발표한 첫 장편영화 '수자쿠'로 칸영화제 사상 최연소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고, 2007년 칸영화제에서 '너를 보내는 숲'으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쌉싸래한 유머 감각은 '첩첩산중'에서도 여전하다. 대사와 상황들이 엮이고 꼬이면서 실소를 자아낸다. 전주의 친구를 만나러 간 미숙(정유미)은 친구가 자신의 옛 애인인 전선생(문성근)과 만나는 사이임을 알고 화가 나서 헤어진 남자친구 명우(이선균)를 전주로 부른다. 뻔뻔한 전선생과 배신감에 치를 떠는 미숙이 명우를 쿠션 삼아 벌이는 신경전은 치사하고 우스꽝스럽다. 욕망의 치졸함과 젠체하는 지식인의 위선을 조롱하는 유쾌한 시선에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라브 디아즈의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는 필리핀의 한 작은 섬에서 금광이 문을 닫은 뒤 피폐해진 마을 이야기다. 잔뜩 먼지가 낀 듯한 거칠고 흐릿한 흑백 화면이 주민들의 심리를 표현한다. 주민들은 한 동네에 살다가 캐나다로 이민 간 여자가 찾아오자 그녀를 납치해 몸값을 받을 궁리를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단편이라 재미는 덜하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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