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는 국회에서 결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행정 부처가 분산되면 행정에 커다란 비능률이 야기되고 정부로서는 이를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총리는 세종시 계획 수정을 '국가대계'라고까지 부르면서 밀어붙일 모양이다.
세종시 다툼의 본질
행정부처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면 자연히 일 하기가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요소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국가대계를 들먹일 정도로 큰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집이 서울에 있고 학교는 춘천에 있어 참 비효율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낄 뿐 그것 때문에 교육이나 연구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정부는 새로 건설될 세종시가 자족 기능을 못 갖출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근거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가 구상하는 첨단 기술도시 계획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비효율이나 자족 기능 문제가 4년 전 여야 합의 때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 고려도 없이 국회가 세종시 법을 만들었다면 이 또한 한심한 일일 것이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자 애초에 이에 합의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치에서 신뢰는 참으로 중요하다. 오랜 논란을 거쳐 합의한 중차대한 사안을 나중에 한 쪽이 번복하겠다고 나선다면 민주 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올바른 정치적 태도가 아닐뿐더러 국가적 혼란을 일으킬 '비효율'적인 일이다.
세종시 계획 자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상하는 수정안도 일리가 있고, 국회가 합의한 원안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두 부족한 궁여지책의 안으로 보인다. 정말 지방 균형발전을 이루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상했던 대로 수도 이전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밀어붙이다 어정쩡한 합의로 타결한 것이 혼란의 근원이 된 셈이다.
수도 이전이 불가능한 것은 경제 효율 때문도 행정 효율 때문도 아니고 기술적 어려움 때문도 아니다. 기존의 수도권이 가진 막강한 거부권 때문이다. 중앙 권력에 대항할만한 힘도 못 갖춘 비주류 대통령이 추진한 수도 이전이 성사되기는 애당초 어려웠다. 세종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수도권 기득세력과 도전세력의 힘 싸움이라고 본다. 국가대계니 국민과의 약속이니 정치적 신뢰니, 또는 능률이니 비능률이니 하는 입씨름도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지만, 크게 보면 모두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힘 싸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싸움은 요즘 또 하나의 정쟁 거리인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싸고도 일어난다. 공교롭게도 이 모두에 헌법재판소가 개입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을 '관습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하더니, 이번에는 미디어법 개정이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많지만 결정 내용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수도권의 막강한 거부권
둘 다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다. 기득권이 기득권을 낳고 힘이 힘을 쌓는 것이 우리 현실인 바, 헌법재판소는 이에 법의 힘을 빌려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코미디언 안영미가 우습게 풍자한 '세상의 이치'이던가?
수도권의 힘과 자본의 힘, 이 둘은 서로 결합하면서 한국 사회를 좌우하는 세상의 이치가 된 모양이다. 기득권의 힘은 점점 강고해져 가고 이를 깨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데, 대통령이 내세우는 중도 실용은 과연 어느 편에 속할까?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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