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의 눈마저 흐리게 한 황진이, 그의 무대 위에서의 변신은 끝이 없다. 국립국악원이 소리를 화두로 명기(名妓) 황진이를 되살려낸 소리극 '황진이'를 26~29일 공연한다. 영화, 뮤지컬 등에서 편견을 거스른 애정의 주인공으로 흔히 부각되던 황진이가 여기서는 예술적 기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교방기(敎坊妓)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지난 5월 세종조 회례연을 무대화한 '세종, 하늘의 소리를 잇다'로 국가브랜드작품 사업을 시작한 국립국악원은 '황진이'를 제2호 작품으로 선정,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출에 김효경 서울예대 교수, 극본에 김용범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음악에 작곡가 김대성씨 등이 땀을 흘리고 있다.
버전업된 악가무(樂歌舞) 전통의 총체극이다. 교방무, 입춤, 장구춤, 태평무, 검무 등 민속 무용과 승무, 바라, 나비 등 불교 무용에서 연원한 볼거리가 선비의 풍류ㆍ놀이 문화와 합쳐져 풍성한 무대를 창출한다. 그 중심은 국악기 반주에 얹혀 나오는 '청산리 벽계수야' '상사몽' 등 8편의 시조와 황진이의 스승인 화담 서경덕의 '마음이 어린 후니' 등 4편의 한시에 선율을 붙인 아리아다. 임제의 시조 '청초 우거진 골에' 등 황진이와 관련된 한시 13편에도 전통 곡조가 붙었다.
특징적인 것은 각각의 노래를 따로 떼내 단일 작품화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 점. 이같은 곡이 모두 32곡이다. 이 무대를 창작 국악의 풍성한 향연장으로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국립국악원측은 "앞으로 수정과 축약 작업을 거쳐 독립적 아리아로 발전시켜 일반화할 계획"이라며 "장차 갈라 쇼도 가능하도록 줄거리를 짰다"고 밝혔다.
무대는 신분차별의 냉혹한 세상, 인간사의 허위 등 사람 사는 어느 시대에나 비슷할풍경을 풍자와 골계의 선율로 풀어간다. 그러나 초점은 서경덕으로부터 황진이가 받는 위로와 진정한 사랑, 나아가 자유에 맞춰져 있다. 황진이와 선비들의 문학적 대결 대목에서 소개되는 '잡체시(雜體詩)' 등 잊혀진 풍류와 만나는 재미도 각별하다. 경기, 서도 민요를 주조로 한 선율 위에서 펼쳐질 국악기와 서양 악기의 만남은 귀를 즐겁게 한다.
박일원 국립국악원장은 "개성과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경서도 음악과 궁중음악을 집성시킨 주인공으로 황진이를 내세운 본격 '국악 뮤지컬'"이라며 "남북 교류와 세계 무대 진출을 염두에 둔 국가브랜드작품으로 자부한다"고 밝혔다. 황진이의 시를 부각,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경기민요 이수자인 최수정이 타이틀 롤을, 가곡 이수자인 이정규가 서경덕 역을 각각 맡아 국립국악원의 민속악단, 무용단, 정악단 등과 함께 모두 70여명이 등장하는 풍성한 무대를 만든다. 이 무대는 창극(1995년 국립창극단)_오페라(2002년 한국오페라단) _정가극(2004년 국립국악원)_연극(2005년)_ 뮤지컬(2006년)_TV 드라마(2006)_영화(2007년) 등으로 계속돼온 황진이 재해석의 계보를 잇는 것이기도 하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26ㆍ27일 오후 7시30분, 28ㆍ29일 오후 7시. (02)580-330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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