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질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5,000년 전 스핑크스의 퀴즈다. 나그네에게 "어려선 네 발, 장성해선 두 발, 늙으면 세 발로 다니는 동물은?"이라고 묻고, 맞혔나 틀렸나에 따라 심각한 상벌(賞罰)을 주었다 한다. 인간류의 시작과 함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성경 창세기)"라는 하나님의 물음이 있었지만 답변이나 상벌이 강제되지 않아 성격이 다르다. 질문자가 힌트를 제시하면 답변자는 기지나 지식을 총동원해 즉각 응답을 해야만 하고, 크든 작든 보상이 수반되는 것이 퀴즈다. 퀴즈라고 하면 우리에겐 '장학퀴즈'가 으뜸이다.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는 1973년 2월 MBC TV에서 방영됐다. 당시 모든 대기업들이 고교생 프로는 돈이 안 된다며 외면했으나, 중견기업에 불과했던 선경그룹(현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청소년에 유익하면 무조건 지원한다"며 이례적으로 후원에 나섰다. 20여년 간 매주 빠짐없이 방영됐으나 1996년 10월 MBC 내부 사정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원에 힘입어 3개월 후 EBS를 통해 부활됐고, 14일(토)엔 제666회가 방영된다. 학생복 만년필 자전거 전자사전 노트북 PMP 등으로 변천한 상품들은 시대별 청소년의 재산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장학퀴즈 문제 내듯 하지 마세요"라고 항의했다. 정확히 핵심을 찌른 항변이다. 퀴즈란 상벌을 전제로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지와 지식의 순간적 발동을 다투는 게임이어서 국회에서 할 짓이 아니다. 의원들의 '퀴즈'는 스핑크스의 질문처럼 고상한 것도 아니다. 앞뒤가 잘린 채 보도돼서 그렇지 생중계 등으로 차분히 살펴보면 질문 자체가 답변을 듣자는 게 아니라 "모른다"거나 오답을 유도하기 위한 술책이다. 국회부의장이 항변에 경고했는데 혹 '장학퀴즈'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국회가 문을 열 때, 청문회든 상임위든 본회의든 의원들이 질문을 하는 행사엔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제3악장을 틀도록 하자. 알레그로 Eb장조 2/4박자 경쾌한 이 곡은 장학퀴즈 프로의 시그널 뮤직으로 청소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고 있다. 의원들의 질문이 최소한 장학퀴즈의 수준은 넘도록 해달라는 국민들의 희망사항을 전하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 퀴즈란 맞히면 상을 주고 틀리면 벌을 주는 것인데, 벌 줄 생각만 품고 있으니 의원들의 질문이 퀴즈만도 못할 수밖에. "장학퀴즈 문제 내는 수준만이라도 유지해 주세요."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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