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와당(瓦當)은 빗물, 눈, 바람 등으로 인한 손상을 막으려는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서주 시대부터 시작해 한국과 일본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와당의 장식 속에는 각 시대와 국가의 예술적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검사 재직 시절 '기와검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법무법인 세종의 유창종(64) 변호사가 30여년의 와당 연구를 결산한 책 <동아시아 와당문화> (미술문화 발행)를 출간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와당을 시대와 나라별로 분류해서 특성을 설명하고 와당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살핀 책이다. 동아시아>
그와 와당의 인연은 청주지검 충주지청 검사로 근무하던 1978년 충주 탑평리 중앙탑 근처에서 연꽃무늬 와당을 주우면서 시작됐다. 그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연꽃잎이 6개인 것은 신라 와당의 특색이고, 회백색은 백제 와당의 특징이며, 연꽃잎의 웅건한 모습은 고구려의 개성을 지녔다"면서 "세 나라의 기질을 모두 지닌 하나의 와당을 통해 와당 수집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와당이 문화 교류의 흔적임을 깨달은 그는 이후 "수사를 하듯" 와당 연구를 시작했고, 5,000여점이 넘는 와당을 수집했다. 2002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1,800여점을 기증해 '유창종실'이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서울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해외 학자들과 교류하며 학술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와당에서 출발한 그의 문화재 분야 공로는 만만치 않다. 그가 조직한 고미술연구모임 예성문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1979년 중원고구려비(국보 205호)를 발견했고, 1996년에는 국보 274호였던 '귀함별황자총통'이 가짜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일본의 와당 수집가 이우치 이토미의 한국 와당 컬렉션을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고구려 와당에 대해 새로운 학설을 제기한다. 일본 학자들은 고구려의 연화문와당이 중국 북조의 영향으로 출현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북조와 고구려의 와당은 양식적으로 큰 차이가 있고 와당의 출현 시기도 고구려가 더 빨랐다는 점을 들어 남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 또 백제 연목와(椽木瓦ㆍ처마 밑 서까래가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착했던 특수와당)의 원류가 남조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는 일본의 와당은 한국과, 중국의 와당을 흉내 내는 수준에 그쳤지만, 한국은 중국의 와당을 받아들이되 독창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통일신라 와당의 예술성은 중국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그는 "고대인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처마 끝에 아름다운 와당을 매단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와당을 통해 삶과 역사를 재음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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