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한 국제기준을 놓고 노동계와 정부의 장외 공방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양측은 논리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국내법 등 관련 규정을 앞세워 정반대 해석을 내놓으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노조 전임자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앞서 오전에는 노동부가 "노동계의 주장은 일방적"이라며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는 ILO 기준에 부합한다'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이례적으로 브리핑까지 했다. 양 노총은 당초 토론회 참석을 제안했지만 노동부는 거부했다.
논쟁의 핵심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노동관련 국제 전문가들은 "전임자 급여 문제를 법률로 정해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팀 드 메이어 ILO 노동기본권 담당자는 "노조 전임자 급여는 입법사항이 아니다"라며 "법적 금지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ILO 협약 135호는 '근로자(노조) 대표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기업이 적절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4조는 '노조업무에만 종사하는 자는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안 된다'고 돼 있어 상충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현 노조법은 전임자 급여를 금지한다기보다 비용 부담의 주체를 국내법을 통해 사용자가 아닌 노동조합으로 하자는 것이어서 국제기준에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또 '노조 내부활동 비용은 법률, 단체협약, 관행으로 결정한다'는 ILO 권고 143호가 노조법 81조의 단서조항과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10차례에 걸쳐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CFA)가 "입법적 관여를 중지하고 노사 자율에 맡겨라"고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노동부의 입장은 다르다. 노동부는 "주로 노동단체가 제기한 사건을 논의하는 CFA의 결정보다 총회에서 회원국 3분의 2 표결로 채택한 ILO 협약, 권고가 우선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CFA의 결정이 ILO 협약보다 하위에 있다는 발상은 무지의 극치"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한국이 노조 전임자 금지를 규정한 유일한 나라'라는 것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서는 ILO와 같은 취지로 근로자 대표의 '활동'에 대해 편의를 제공하지만 우리처럼 노조전임자의 '지위'에 따른 것이 아니다"면서 "우리도 근로자 대표의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박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정부는 법의 관점에서, 노동계는 상식의 관점에서 노사관계를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양측이 먼저 법과 상식의 간격을 좁히지 않는 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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