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은 소설의 시간이었다. 나는 한국소설을 통해서 세월의 무늬를 내 의식 속에 새기며 어떤 삶의 형식을 경험했다."
불문학자 김화영(68) 고려대 명예교수가 새 평론집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제1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인 평론집 <소설의 꽃과 뿌리> (1998)이후 11년 만이다. "모든 텍스트의 비밀은 이미 그 텍스트 속에 숨어있다"는 평소 지론대로 텍스트 내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눈길과 깊이있는 사유에서 길어올린 김 교수의 유려한 문장은 여전하다. 소설의> 소설의>
책머리에 "지난 10여년 동안 이 나라에서 발표되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고 밝힌 김 교수는 그 말대로 '성실한 독서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젊은 작가 정한아로부터 중견작가 구효서, 원로작가 박완서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 읽기의 진폭은 넓고 고르다. 25편의 소설평이 실려있는데, 지난 10여년 간 한국소설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화가라면 무엇보다도 인상주의 화가다.
윤대녕의 붓질에는 인상주의 화가 특유의 우수가 깃들어있다"(윤대녕 '빛의 걸음걸이' 평), "이 작가는 현재 우리 소설계의 예외다. 그의 작품들을 대하면 문득 소설은 바로 이런 것이었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러워진다."(박완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소설은 창틀 밖으로 내다보는 인생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새롭게 환기되는 이 작품은 그래서 여운이 길다"(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그러나 칭찬해야 할 작가들에 대한 아낌없는 상찬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지난 10여년 간 한국소설의 모습을 '풍요 속의 빈곤'으로 정의한다. "언어의 장인정신 같은 구시대의 유물은 이념적으로 거부한다는 듯 서둘러 쓴 문장과 거침없는 줄 바꾸기,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모든 잡념을 여과없이 속기한 컴퓨터 시대의 안이한 수다, 소설가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을 '실험정신'으로 포장해놓은 난해한 산문…". 그가 한국소설에 가하는 죽비 소리는 서늘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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