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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순의 다시 가본 한국의 오지] 전남 광양시 옥룡면 논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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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순의 다시 가본 한국의 오지] 전남 광양시 옥룡면 논실마을

입력
2009.11.0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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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북으로 마주선 백운산(1218m) 중턱에는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마을이 있다. 사람은 물론이고 기르는 가축마다 잘 자라고 장수한다는 마을, 전남 광양시 옥룡면 답곡리 논실이다. 1987년 겨울 이곳을 처음 찾았다.

아홉 가구가 전부였던 주민들은 산에서 나오는 천혜의 자원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사계절을 지내고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기 전에 땔감을 충분히 준비해 놓아야지 눈이 많이 내리면 앞 뒷집 통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해." 여든이 휠씬 넘은 할머니가 부지런히 톱질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는 고로쇠 나무 약수가 장수의 비결이라고 넌지시 알려 주기도 했다.

며칠 전 논실을 다시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한참을 걸어 올랐던 옛길은 잘 포장된 도로로 동네 앞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하얀 눈이 쌓인 백운산을 배경으로 선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그림처럼 달렸다.

산골마을의 추위는 매섭다. 쌀쌀한 아침,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이창기(53)씨는 예나 지금이나 나무는 이 마을의 중요한 연료라며 산에 매달려 사는 이곳 사람들의 변치 않은 생활을 말한다. 다만, 이제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환갑을 넘긴 노인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돌절구 질 하는 이 사람은 내가 맞네, 활 든 아이는 우리 작은 아들이고… 여기 나무하던 우리 시어머니는 백살 가까이 사셨어." 박삼금 (81)씨는'한국의 오지'시리즈에 게재됐던 20년 전 사진을 살펴보다 바로 어제일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논실에는 논, 밭이 없다. 가끔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은"뭘 먹고 사냐"며 궁금해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마을은 웬만한 농촌보다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돈 벌이가 있다. 매년 봄철이면 고로쇠 나무 약수를 찾아 오는 사람들로 마을이 꽉 찰 정도라고 한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가 마을의 경쟁력인 셈이다.

인심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것 말고는 자랑거리가 없었던 논실은 이제 '고로쇠약수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오지였던 시절부터 논실을 지켜온 주민들은 이제 예전처럼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논실을 꿈꾸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더 많은 사진은 포토온라인저널( photoon.hankooki.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상순편집위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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