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아트선재센터. 트라이앵글에서 시작해 피콜로,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베이스드럼까지 점점 커지는 악기를 든 18명의 연주자가 전시장 가운데 한 줄로 길게 앉았다. 30초마다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조명('작품번호 160'),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커튼('작품번호 990') 속에서 이어진 20분간의 공연 역시 짧은 멜로디의 연주와 멈춤의 반복('작품번호 673')이다. 멈춤의 시간 동안 관람객들의 귀에는 전시장 바닥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8개의 메트로놈('작품번호 180') 소리, 4개의 비디오 속 사람들의 구토('작품번호 837')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다.
비디오 앞으로 한 남자가 성큼 다가가더니 볼륨을 한껏 키운다. 통념을 뒤엎는 작품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마틴 크리드(41ㆍ사진)다.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그는 '작품번호 673'에 대해 "오케스트라 악기의 크기는 다 다르지만 각자 동등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줄로 배열했다"고 말했다.
크리드는 2001년 세계적 명성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할 때부터 논란을 몰고 다녔다. 수상작은 빈 방에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조명을 설치한 것이 전부였다. 격분한 관람객이 벽에다 달걀을 던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일상 공간 속의 비일상적 상황을 통해 공간과 사물을 재인식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그는 지난해 영국 테이트브리튼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미술관 복도를 반복해서 달리는 행위 자체를 작품이라며 내놓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을 모은 이번 전시 역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겨진 종이, 층층이 쌓인 상자, 키에 따라 진열된 선인장 화분 등 일상적 사물이나 행위의 반복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그는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대신 번호를 붙인다). 크리드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즉흥성과 임의성이다.
크기가 다른 개 두 마리가 하얀 갤러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영상물('작품번호 670')은 피아노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본 장면을 옮긴 것이고, '작품번호 837'에서는 파티장에서 술에 취해 구토하는 사람들이 카메라 속을 들락날락한다. 침묵과 우연성으로 이뤄진 작곡가 존 케이지의 현대음악도 연상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크리드의 대답은 그의 작품처럼 알쏭달쏭했다.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여기는 것, 관람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예술 아니겠냐. 사람들은 나를 개념미술가라고 하는데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내 삶을 좀 더 재미있고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와 실험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구토와 배설, 글쓰기, 말하기 같은 인간의 일상적 행위는 모두 창조적인 것"이라며 "나는 만든 것들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기를 좋아하기에 작가로 분류될 뿐 뒤집어보면 내 작업들 역시 세상의 일부"라고 말했다. 테이트브리튼 전시 당시 그가 미술관 외벽에 네온으로 쓴 문구 역시 '세상+작품=세상'이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733-8945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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