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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행복한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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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행복한 삶과 죽음

입력
2009.11.0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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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7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9개항의 기본원칙을 발표했고, 9월에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안)'을 발표했다. 10월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의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지침'을 공개했다. 각종 여론조사도 이런 경향을 지지한다. 이제 죽음은 무조건 멀리해야 할 적이 아니다.

내 몸뚱이에 대한 요청

이런 지침은 죽음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태도와 부합하고 의료 현장에서 실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평소에 지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미리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이해하는 것은 임종을 지키는 가족과 의료인에게 꼭 필요한 교양이 될 것이다. 다음은 필자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담은 몸뚱이에 대한 요청이다.

나의 몸뚱이는 나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몸뚱이의 미래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 자신이 내 몸뚱이에 대한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인공호흡과 인공영양을 포함한 모든 생명유지 장치를 거두어주기를 희망한다. 만약 내가 사랑한, 그리고 나를 사랑한 어머니와 아내가 어떻게든 나의 생명을 유지시키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것은 내 몸뚱이를 낳고 길렀으며 평생을 함께한 그들의 권리이다. 하지만 부디 그런 결정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만약 내 몸뚱이의 어떤 부분이 다른 생명에 긴요하다면, 그리고 내가 그런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신장 간장 피부 각막 등 필요한 모든 부위를 이식에 사용해 주기 바란다. 다른 생명에 긴요하지 않은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은 불에 태워 조상 곁에 묻어주기 바란다.

대법원의 연명치료중단 결정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케 한 의사의 살인방조죄가 확정된 지 10년 만에 나온 것이다. 살인으로 단죄되었던 인공호흡기 제거가 이제는 정당한 의료행위로 인정되었다. 죽음에 대한 판단과 생각의 변화는 그만큼 힘겹고 더딘 반면 그 변화의 폭은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 자신을 정리하고 보니 죽음이란 것이 뭐 그리 거창할 것도 없는 친숙한 일상의 일부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동안 죽음을 너무 일상과 동떨어진 으슥한 곳에 가두어두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물론 종교적 또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죽음을 다르게 바라보는 분들의 입장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용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했던 죽음마저 초탈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죽음과 행복은 결코 짝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기준에 관한 판단은 행복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장 명확하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개념은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이다. 신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어 합의가 쉽지도 않다. 상식적 수준에서 존엄의 근거와 구체적 맥락을 찾기도 쉽지 않다.

밝은 마음으로 준비할 때

무엇보다 한 해 수십만 건의 낙태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수많은 의문사를 양산해 왔으며 공권력에 의한 사망사건에 아무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는 존엄한 죽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행복한 삶이라는 기준이 훨씬 현실적이고 알기도 쉽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면, 그래서 가족과 친지 등 삶의 여정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애도 속에 떠날 수 있는 길이라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밝은 마음으로 그런 죽음을 이야기하고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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