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회사원 윤모(45)씨는 술자리에서 "아내가 남자랑 문자메시지를 몰래 주고 받는 것 같은데, 싹 지워버리니까 알 수도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다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옆자리 사람이 불쑥 "휴대폰에서 삭제했더라도 다른 사람의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접근해온 것이다. 수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문자메시지 보관함에 접속하면 모든 메시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접속시 필요한 가입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빼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솔깃해진 윤씨는 200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며칠 뒤 브로커는 정말 윤씨 아내의 아이디와 암호를 갖고 나타났다. 이를 건네 받은 윤씨는 아내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를 인터넷에서 수시로 확인하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5일 배우자나 애인 등의 외도를 의심하는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훔쳐볼 수 있도록 해준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휴대폰 판매업자 김모(35)씨 등 2명을 구속하고 공범 양모(31)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올 1월부터 최근까지 뒷조사 대상 37명의 이동통신사 '문자매니저'서비스 아이디와 암호를 빼내 의뢰인들에게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의뢰인들 대부분은 배우자와 애인 등의 외도를 의심했던 자영업자와 회사원들로, 50만~250만원 정도를 이들에게 건넸다.
정상적으로 '문자매니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휴대전화를 통해 인증번호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으나, 이들은 뒷조사 대상의 휴대폰에 내장된 유심(USIMㆍ범용가입자식별모듈)을 잠시 바꿔치기 해 다른 휴대폰으로 인증번호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USIM은 이동통신 가입자의 신원과 전화번호 등이 기록된 손톱만한 칩으로 단말기를 개인 전화기로 개통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장치다. 이들은 평소에 잘 알던 이동통신사 대리점 직원에게 뒷조사 대상의 USIM을 변경 신청해 새 칩을 받은 뒤 공 단말기에 꽂아서 사용해 필요 정보를 빼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USIM이 변경되면 당사자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정지되는데, 이들은 30분 안에 문자메시지 서비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빼낸 뒤 변경 USIM을 취소해 피해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동통신사 대리점의 개인정보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