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 시장에 가면 '살 테면 사고 말려면 말라'는 가게 주인들을 봅니다. 열심히 한다고 뭐가 되겠어 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거죠."
4일 경기 화성 라비돌리조트. 시장경영지원센터(정석연 원장)가 마련한 '녹색시장 만들기 대회'에 참가한 재래시장 200여 여성 상인들은 잔뜩 긴장했다.
연사의 칼 같은 지적에 일부는 얼굴이 굳어졌고 다른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작은 가게로 시작해 여성 CEO로 우뚝 선 연사의 말 한마디도 놓치고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연사는 '족발 신화'의 주인공 '장충동 왕족발' 신신자 대표(54). 그는 1996년 부산의 '장충동왕족발' 가맹점 주인으로 시작해 2001년 본사를 인수했고 현재 170개 가까운 가맹점을 두고 137억 원(2008년)을 벌었다.
신 대표는 "재래 시장을 가 보면 겉으로는 친절을 외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친절하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고객이 내 돈이다' 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
신 대표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는 남편 사업이 부도나 부산 동래에서 장충동 왕족발 가맹점을 차렸다. "하루는 부산 영도에서 주문이 왔는데 배달 약속을 어기게 됐어요. 비가 많이 오고 대목이라 정신도 없었죠.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고 고객과 약속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장대비 속에서 직접 배달을 갔죠. 고객에게 돈을 받지 않고요".
상추는 물론 채소, 김치 등 사이드 메뉴 재료도 최고급을 고집하는 것도 "고객은 가장 맛난 음식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생각 때문. 장충동 왕족발은 2001년 제주도에 자체 무 밭을 만들어 '제주 무'를 개발했을 정도다. 고객들이 봄 무가 맵고 단단하지 않아 동치미로 적당하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자 신 대표는 4계절 내내 맛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섭씨 25도를 유지해야 씹는 맛이 좋고 서리, 눈을 맞아야 매운 맛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 조건에 맞는 터를 제주에서 찾아냈다.
신 대표는 재래시장은 청결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테리어는 물론 주인 스스로 몸 가짐, 옷 매무새까지 청결해야 한다"며 "물건을 보기도 전에 가게와 주인에 대한 첫 인상이 나쁘면 장사는 끝"이라고 말했다.
특히 음식은 청결함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고 했다. 신 대표는 연 매출보다 많은 150억 원을 들여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설비를 갖춘 공장을 세웠다. 그는 "다들 처음에는 족발 회사가 굳이 큰 돈 들일 필요가 있느냐며 의문을 품었지만 덕분에 깨끗함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었다"고 자평했다.
신 대표에게 가장 큰 시련은 짝퉁 브랜드의 공습이었다. 한 때 2,000개가 넘는 짝퉁 '장충동왕족발' 이 전국에서 판 쳤는데 특히 자신의 가맹주였던 이들까지도 비슷한 회사 이름으로 장사를 했을 정도였다고.
신 대표는 "배신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잘못한 자식을 이해하려 애쓰듯 배려하려 했다"면서 "대신 더 좋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 고객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유사 브랜드들과의 맛 차이를 알아차린 소비자들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또 "종업원 또는 직원들에게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성공도 가능하다는 것. 그는 돌밭이던 청원 공장 주변을 다채로운 야생화를 심은 꽃밭으로 바꿨다. 엄마가 집을 꾸미듯 직원들이 좀 더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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