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이든 그림 그리는 이든 예술 한다는 이들에게 창작을 위한 공간, 흔히 쓰는 말로 '작업실'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만큼이나 큰 역할을 한다. 작업공간 자체가 예술의 산실이 된다. 따로 작업실을 갖지 못했던 어느 문인은 창작의 태도를 유지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아침에 자기 집 안방에서 식사를 마친 뒤 복식을 갖춰입고 원고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는, 작업실로 출근하듯 건넌방으로 가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글을 쓰다가, 다시 안방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매일의 일과를 마무리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지상의 방 한 칸'을 자기만의 작업실로 따로 가질 수 있는 시인, 소설가나 미술가는 그렇게 흔치않다. 미술인들이 자조처럼, 우스개처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왜 '작업실이 좁아서…' 하고 한 마디 해주지 그랬어." 작품보다는 여작가의 미모에 끌려 추근대는, 콜렉터를 자칭하는 남성들에게 그 한 마디가 어떻든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예술인들은 어떨 때는 무법자가 되기도 한다. 황폐화된 도시지역이나 개발지역의 버려진 건물을 불법 점유 혹은 무단 점거해서 작업실로 쓰는 '스콰트(squat)'는 세계 각지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운동'이 됐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젊은 미술인들이 공사 중단으로 방치됐던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을 작업공간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며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지난달 말 '연희문학창작촌'을 개관했다 한다. 서울시사편찬실로 사용되다 이 기관이 이사 간 뒤 몇년째 버려져 있던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공간에 작가들을 위해 4개 동의 건물에 20개의 집필실과 자료실, 체력단련장과 산책로까지 갖춘 창작촌을 만든 것이다. 작가들이 1~6개월 단위로 입주할 수 있는데 1차로 19명이 입주했다.
근래 국내에서 문인들을 위해 공동창작공간을 만든 것은 아마 소설가 이문열이 1998년에 현대판 서원을 표방하며 설립한 부악문원이 시초일 것이다. 문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실로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소설가 고 박경리가 1999년에 설립한 원주 토지문화관이다. 백담사 만해마을도 2004년부터 문인창작집필실을 열었고, 소설가 황석영도 문학촌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연희문학창작촌은 작가들의 집필실에서 나아가 열린 문화공간이자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간, 외국 작가들과도 교유하는 국제적 문학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아무튼 작가들을 위한 방을 기존 부악문원이나 토지문화관처럼 누구보다 동료들의 사정을 잘 아는 문인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데에 연희문학창작촌의 의의는 있다. 중국의 가난한 예술인들이 스콰트처럼 모여들었던 베이징의 버려진 공장지대 '따산쯔798' 지역이 중국 당국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데서 보듯, 예술도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받을 때 꽃핀다.
작가들이 머리 질끈 싸매고 원고지 북북 찢어가며 글 쓰던 골방의 이미지와 서울 도심에 생긴 창작촌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방도 결국 작가들의 골방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썼던 글 한 구절을 되뇌어본다. 읽고, 쓰고, 창조를 잉태하는 골방에 대한 이야기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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