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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2>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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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2>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입력
2009.11.0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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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컬렉션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다음날부터 충북 청주와 호남의 광주를 연이어 방문했다.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의 초청 강연과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프로그램의 하나인 '규방다담'에서의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청주에서는 오전에 '나의 삶 나의 열정'이란 주제로 아침 강연을 한 후 전시장을 관람했고, 오후에는 청주 시민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광주로 출발해 오후 무렵 행사장인 '이장우 가옥'에 도착했다. '이장우 가옥'은 110년 전 구한말에 지어진 멋진 한옥으로 '규방다담'은 노을과 별이 쏟아지는 밤에 이 한옥의 안채에서 진행되었다.

'규방다담'이라고 붙여진 이름처럼 방안에 20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전통차를 들며 강연을 듣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대담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문화를 어떻게 세계화하고 어떤 식으로 현대 생활에 적용할 지에 대한 내용으로 서로가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열린 자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여성의 직업관이나 자녀 교육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다가올 2025년을 전후해 여자와 남자가 전문 인력, 즉 사회적 위치에서 서로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이 때가 되면 여성의 역할 비중이 남성을 추월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성차별 수준은 134개국 가운데 115번째에 머무르고 있다. 그 뒤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규방다담'에서 강연 중 여성분들이 결혼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잃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해 박수 세례를 받았다. 결혼 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의 아내 또는 자식의 엄마로 불리게 되면서 자기의 이름은 점차 잊어간다. 여성들도 자기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조다.

예전에 딸이 결혼을 할 때 한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다. 결혼하는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어느 집안, 어떤 사람에게 시집을 가든지 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래서인지 딸은 낼 모레면 엄마가 되지만 지금도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다.

다음으로는 자녀 교육 문제가 떠올랐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자녀가 아침에 학교에 가면 밤 10시나 돼야 집에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 적이 있었다. 부모와 형제의 사랑 속에 보내야 할 시간을 벌써부터 지식과의 싸움으로 보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요즘 부모들은 스포츠와 예술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한 사람의 스타가 나올 때마다 열병처럼 모두 한 쪽으로 쏠리면서 편향된 교육에 열을 올린다. 아이들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채 인기에 치우친 일방적인 부모의 요구는 인적자원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술과 음악을 예로 들면 우리 아이들은 학원에서 먼저 손기술부터 배우며 예술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손잡고 나란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들으면서 먼저 귀를 트게 되고, 파리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것을 통해 눈을 먼저 트이게 한다고 한다.

우리의 오감 중 상상력을 가장 풍부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청각과 시각과 촉각이라고 얘기한다. 대개의 경우 상상력은 현실과 먼 곳에서 오게 된다. 예를 들면 한적한 몽골의 고원에서 울리는 소리는 놀랄 만큼 먼 곳까지 전달된다. 즉 청각은 오감 중 가장 먼 곳으로부터 감지할 수 있어 제일 먼저 우리의 상상력을 깨우고 나머지 감각을 열리게 한다. 반대로 촉각은 가장 현실적인 감각이 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가장 현실적인 기능을 익히는 손의 기능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 내가 만났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상상력의 한계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국 우리 교육방법의 문제를 드러낸 결과이기도 이다.

나는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곤 한다.

먼저 어떤 사물을 보고 눈을 감고 얘기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같은 사물의 다른 느낌들이 머릿속에 연상된다. 가령 처음에는 색상이 먼저 머릿속에 그려졌다면 다음에는 질감이 연상되고 다음에는 그 사물의 메시지가 연상되는 등 매번 다른 이미지가 뇌리에 그려지게 된다.

또 하나는 모든 물체를 보이는 면만 보지 않고 때로는 옆에서, 때로는 뒤에서 관찰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가끔씩 내가 습관처럼 즐기는 훈련 방법도 있는데, 잠이 들기 전 눈을 감고 내가 집에 오기까지의 일을 비디오처럼 거꾸로 돌린다. 상상 속의 내가 다시 문을 열고 나가 그날에 있었던 일상을 역으로 진행해 본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은 상상의 힘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여행, 영화, 독서, 그림, 사진 등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지만 그 영감을 받는 빛과 같은 찰나의 감동은 상상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눈을 감고 날개를 펴고 지구를 내려다보며 달나라로 날아가는 상상. 꿈은 상상의 날개 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

지금은 감성경영, 디자인경영 시대로 도시디자인과 국가디자인이 표방되고 있을 만큼 디자인이 중요시 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성은 아직까지도 이성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식만이 아닌 상상력으로 풍족해진 우리 미래를 뇌리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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