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용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訓盲正音)'이 만들어진 지 83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시각장애인들에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훈맹정음은 조선총독부 산하 제생원 맹아부(현 서울맹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송암(松庵) 박두성 선생이 창안해 1926년 11월 4일 반포한 한글 점자로 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지식을 익히기 위해서 꼭 익혀야 하는 문자다. 훈맹정음은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1998년 문화관광부의 '한국 점자 규정집'으로 정리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훈맹정음을 쓸 수 있는 시각장애인 수는 아직도 극히 적은 실정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시각장애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2만8,000여명, 이 중 점자가 꼭 필요한 1~3등급의 중증 시각장애인만 5만4,0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점자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1만명 정도에 불과하며 보급률도 과거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시각장애인 단체들은 말하고 있다.
훈맹정음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예전에 비해 늘었는데도, 보급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신인식 회장은 "일반인을 위한 도서가 일년에 약 5만권 정도 출판되는데 비해 점자 책은 0.1%인 50권도 채 안 된다"며 "점자 자료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시각장애인들이 애써서 배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협의회 이경재 총무는 "최근에는 점자 외에 일반 오디오북(녹음도서)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는데, 녹음도서는 점자 책보다 그 수가 더 적고 글 쓰는 데도 도움이 안 돼 사회적응에 보탬이 안 된다"며 "점자를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문자체계를 알 수 없어 결국 문맹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점자 활용을 높이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인식뿐 아니라 정부 등 비장애인의 인식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은 전국에 35개가 있는데 국ㆍ공립은 하나도 없다"며 "개인이 운영하는 도서관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금은 턱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훈맹정음 창안 83주년인 4일 훈맹정음 보급을 위해 국립 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 강당에서 전국 시각장애인 낭독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한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글을 점자문으로 바꿔 낭독 자료로 사용하는데, 참가자들이 점자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낭독하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이 총무는 "이번 대회가 시각장애인의 점자 이용을 늘리고, 일반인에게는 시각장애인도 문자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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