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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수월성 교육과 친서민 행보

입력
2009.11.0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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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가 대유행 단계에 접어 들자 정부가 대응 수준을 '심각'단계로 격상했다. 정부의 적극 대응이 전례 없는 일이라 오히려 국민 불안이 확산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하지만 신종 플루는 불치병이 아니다.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면서 감염 시 신속히 치료를 받고, 백신 접종을 받으면 극복할 수 있다. 의료 현장의 혼란, 자녀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하지만 신종 플루 정보를 눈 여겨 본 국민이라면 과도한 걱정은 불필요하다.

치료약 필요한 국정 혼선증

신종 플루는 예방ㆍ치료가 가능하지만 현 정권의 국정 혼선 증세는 좀처럼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권 출범 3년 차를 목전에 두었는데도 그 증세는 유행병 수준을 넘어 만성질환 단계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사교육ㆍ외국어고 문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및 복수노조 문제에서부터 세종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정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돌출하는 집권 세력 내의 혼선은 일상사가 됐다. 의견차이가 있으면 이를 좁히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 원만한 타협의 결과를 내놓으면 될 텐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혼선과 이견을 합의 도출 과정이라고, 왁자지껄함이 내부의 건강성과 민주성을 반증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논의의 전 과정을 주목하며 인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들이 정부와 여당에게 바라는 것은 논의 과정의 혼선을 최소화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정책의 불확실성을 신속히 제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의 그런 기대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사교육비 경감, 외고 폐지 논란 등 급변하는 교육 정책은 국정 혼란의 근본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대표 사례다. 4개월 간격을 두고 불거진 두 논란은 묘하게도 추진 방식과 수순이 꼭 닮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해 교육과학기술부와 대립하면 이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해서 교과부에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식이다. 그 때마다 관련 인사들은 대통령의 복심을 대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집권 세력이 보여준 내부 혼선이 국민에게 대통령에 대한 근원적 물음, 즉 경쟁과 수월성을 강조하는 정책과 이른바 친서민 행보 중 어떤 것이 이 대통령의 교육 철학과 가까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외고 폐지를 처음 주창했을 때, 대다수 국민은 그것이 친서민 행보를 시작한 이 대통령의 복심이라 여겼다. 진보 진영조차 외고 폐지 주장을 환영했다. 하지만 논란의 끝머리에 나온 이 대통령의 답은 "수월성 교육은 포기할 수 없다"였다. "국가 미래를 위해 상위 2∼3%의 영재 육성을 위한 '영재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청와대 대변인은 설명했다.

그 말이 맞다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와 교육 정책 사이에는 괴리가 생긴다. 상위 2~3%를 위한, 그래서 명문대 진학의 보증수표가 될 수 있는 외고는 사교육비 경감은커녕 또 다른 사교육 조장의 위험성을 안게 된다. 내신 비중을 높이고 입학사정관 전형을 도입하는 쪽으로 입시제도를 바꿔도 사교육 시장은 맞춤형 사교육으로 맞설게 뻔하다. 여기에 자율형 사립고까지 가세해 명문대 진학 경쟁에 뛰어들면 대통령이 교육 분야에서 보여주려던 친서민 행보는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명료한 국정 철학이 치료약

집권 세력 내부 인사들이 저마다 대통령의 생각을 달리 유추하는 판에 국민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는 상충된 모습을 실용주의로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정 혼선 증세의 만성화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길은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철학을 명료하게 가다듬는 것이다. 그래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불확실성도 제거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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