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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2부 (2) 이주연 삼성전자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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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2부 (2) 이주연 삼성전자 책임

입력
2009.11.0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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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플랫 A플랫 D플랫 E플랫."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ㆍ디지털미디어 전시회인 'IFA' 전시장. 12만1,000㎡에 달하는 전시 공간에 은은히 퍼지는 선율이 있었다. 다른 업체들이 시각적 화려함과 크기를 내세워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할 때 삼성은 소리로 승부수를 던졌다. 소리만 듣고도 삼성을 연상할 수 있도록 1년여간 공 들여 제작한 삼성만의 멜로디인 'E플랫 A플랫 D플랫 E플랫'을 전면에 내세운 것.

삼성은 이 가락을 테마로 탄생과 진화의 스토리를 담은 6분간의 변주곡을 연주했고, 이를 140대의 발광다이오드(LED) TV를 통해 전달했다. 수 많은 관람객이 자연스레 소리에 이끌려 삼성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물론이다. 삼성 전시장을 찾지 않은 이도 멀리서 들려온 삼성의 선율을 흥얼거릴 정도였다. LED TV를 통해서 방영된 영상도 먼저 사운드가 결정된 뒤 이에 맞는 시각 디자인을 만든 것이었다.

사실 삼성의 대표 소리 'E플랫 A플랫 D플랫 E플랫'은 국내보단 해외에서 유명하다. 삼성의 해외 TV 광고는 모두 하얀 바탕화면 한 가운데 파란색 삼성 로고가 뜨면서 이 가락이 연주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광고뿐 아니다. TV나 휴대폰, 컴퓨터를 켜고 끌 때, 디지털카메라를 작동할 때에도 초기화면에서 삼성 로고와 함께 이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 삼성은 이 소리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삼성 브랜드를 소비자 뇌리에 각인시켜가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인이 소리만 듣고도 삼성을 연상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이주연 책임이다. 4개음의 짧은 모티브이지만 이 소리가 만들어진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먼저 삼성의 소리엔 '대한민국'이 숨어있다. 이 책임은 "음악의 3요소인 멜로디와 하모니, 리듬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리듬"이라며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구호인 '대~한민국'을 바탕에 깔았다"고 귀띔했다. 전 세계인이 삼성 제품을 만날 때 '대~한민국'을 무의식 중 들을 수 있게 숨겨 놓은 것이다.

삼성의 소리를 들을 때 묘한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도 고객에게 설레임을 주기 위한 의도적 장치다. 이 책임은 "이제 삼성의 세계로 왔으니 신비롭고 새로운 곳에서 마음껏 즐기고 갈 것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며 "특히 완결된 음계는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고객이 참여할 여지를 봉쇄할 수도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모니도 특이하다. 포도주를 담은 와인 잔의 테두리를 바이올린 활로 켠 소리와 동남아 전통 악기 '보낭'의 소리로 절묘한 화음을 만든 것. 관악기도, 현악기도 아닌 새롭고 신비한 울림을 창조한 것이다.

이처럼 삼성이 사운드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브랜드를 결정할 때 시각(87%) 다음으로 청각(12%)의 효과가 크기 때문. 이런 덕분인지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올해 처음 175억2,000만달러로 세계 19위를 기록했다.

각 나라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다른 제품 사운드를 적용하는 것도 이 책임의 몫이다. 중국에 팔리는 삼성 휴대폰엔 중국인의 서구에 대한 동경을 반영한 록 음악을 가미하는 반면 유럽에 팔리는 휴대폰에서는 오히려 동양적 느낌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휴대폰의 부팅 시간은 10초지만 디지털카메라의 부팅 시간은 1초 미만인 점 등 제품의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최근에는 뇌파까지 활용한다. 삼성의 최신 휴대폰인 '햅틱'이 전화가 올 때나 터치될 때 진동과 구분이 안 되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냄으로써 거부감을 최소화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며 기능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사운드라는 기능 분야에선 삼성의 최고가 됐지만 이 책임의 대학 때 전공은 사실 생명공학이다. 졸업 후 자신의 적성을 찾아 다시 전문대의 작곡과를 나온 뒤 뮤지컬 음악을 하다가 1994년 삼성 영상사업단에 입사했다.

처음엔 주로 게임 CD롬 타이틀의 사운드를 담당했고 이후 삼성의 다양한 가전 제품에 들어가는 부팅 사운드와 버튼 작동음 등을 설계했다. 이 책임은 "작지만 다양한 기능 부문 경쟁력이 쌓여 하나의 명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느 분야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 최고가 된다면 그보다 값진 것은 없지 않느냐"고 환하게 웃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삼성전자, 대학 14곳에 교과과정

"협력업체의 품질이 삼성의 품질을 좌우한다. 사출, 선반, 금형 등의 경쟁력이 결국 모두 사람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마케팅, 경영, 서비스 등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의 힘은 역시 현장이며, 현장의 경쟁력은 바로 기능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현장에서 한 말이다. 삼성전자가 기능인 인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입상자에 대해 포상금 지급과 함께 인사 특전 등을 부여하고 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1~3위 입상자는 특별 채용한다. 미입상자라 하더라도 인력 상황 등을 감안, 채용한 경우도 적잖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기능ㆍ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산ㆍ학 협력 프로그램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보통신트랙이다. 미래 정보기술(IT) 분야 인재 육성과 기능인 채용을 위해 경북대를 비롯 전국 14개 대학에 정보통신 분야 진출에 필요한 기술과 교과 과정 등을 선정, 학생들이 이를 이수토록 한 것이다. 주로 실무 위주의 교육이 실시되며, 성적 우수자에 대해서는 장학금도 준다. 삼성전자는 또 2006년 국내 최초로 성균관대와 연대 대학원에 휴대폰학과를, 이어 성대에 반도체학과를 세웠다. 디스플레이 업종의 특성에 맞는 교육 과정을 전문 교육하는 LCD 트랙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기능ㆍ기술 인력 육성 및 채용을 위한 노력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기능올림픽 메달 양광현·이성범씨

"기능인에 대한 편견을 날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기능인에 대한 편견을 날려 버리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차분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 남아 있을 법도 했지만 아직도 여드름이 울긋불긋한 20대 초반의 젊은 건아들이 밝힌 소감은 의외로 담담했다.

영광의 주인공인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기능올림픽 사무국 소속 양광현(21)ㆍ이성범(21) 선수를 최근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만났다. 이들은 올해 8월말 캐나다 캘거리 스템피드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카트로닉스(기계ㆍ전자) 2인1조 분야에 참가해 동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땄다는 사실 보단 지난 5년 간 밤낮 없이 훈련에만 몰두하며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게 더 기쁩니다. 기능인들도 당당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하니까요."

'기능인'이란 보이지 않는 굴레에 묶여 지내 온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 떠올랐을까. 이들은 인터뷰 도중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기능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고등학교 1학년 때.

"인문계에 다닌 친구들과 우리를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바라보는 시각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주변 친구들이 그런 시각들을 그냥 인정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뭔가 보여줘야 했어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었을까. 양 선수의 이런 마음은 같은 기능반 친구였던 이 선수와 묘한 교감을 이뤄냈다.

"사실, 성격은 정반대였어요. 광현이는 밀어 붙이는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성격이었지만 저는 꼼꼼하고 집중력이 좋거든요. 처음에 10여명이 들어왔던 기능반에 저와 광현이만 남고 다 나간 것을 보면, 광현이와 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웃음)" 주말 밤낮까지 모두 쏟아 부으며 보내야 했던 지난 훈련 기억들을 이 선수는 이렇게 떠올렸다. 이 같은 피땀 어린 노력은 3년 만에 값진 열매를 가져왔다. 전국기능경기대회 메카트로닉스 부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 덕분에 두 선수는 삼성전자에 특채로 입사했으며, 오늘날 올림픽 메달리스트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자신들을 위해 큰 꿈을 이뤘지만, 색안경을 끼고 기능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선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능인들은 전국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지 못하면, 인정 받을 기회는 거의 전무합니다. 입상자가 아닌 주변 기능인들에 대해선 아예 눈길조차 주지를 않거든요." 작심이라도 한 듯, 양 선수는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단다. 기능인들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기능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이젠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더 노력을 해야겠죠." 두 선수는 훈련 숙소가 있는 수원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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