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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북촌 한옥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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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북촌 한옥 마을

입력
2009.11.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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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한양에 신분 별로 거주지를 조성했다. 북악산 기슭 북촌에는 출사한 사대부들이, 남산 기슭 남촌에는 벼슬 못한 양반이나 중인이 기거했다. 상인들은 인왕산 기슭의 위대(상대), 상민들은 청계천 등 개울변의 아래대(하대)에서 살았다. 이런 주거 형태는 500년 이상 이어졌다. 1900년대 초 호적을 보면 당시 북촌 인구 1만 241명 중 43.6%가 양반, 관료였다. 신분에 따라 사는 곳이 제 각각이니 쓰는 말도 달랐다.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가설라무네''그러니깐두루'같은 말은 도성 서민들이 점잔을 빼려고 양반을 흉내내 쓰던 서울 방언이다.

▦현재 북촌 마을의 한옥은 대부분 1930년대부터 해방 전후까지 지어진 개량형이다. 그 전만 해도 이곳엔 우리가 '전통 한옥'이라고 부르는 권문세가들의 집들이 즐비했다. 대지 면적 1,411평에 건평 255평의 99칸 한옥인 '윤보선 가(家)'는 북촌 양반 가옥의 전통이 잘 보존된 대표 건축물이다. 일제 강점기, 서울 인구의 증가로 주택난이 발생하자 주택 건설ㆍ매매 기업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북촌의 기존 필지를 매입해 50~80평 규모로 쪼갠 뒤 대규모로 한옥을 지어 팔아 큰 수익을 올렸다. 북촌 한옥 마을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재탄생한 것이다.

▦북촌 한옥은 유리, 타일 등 전통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료를 쓰고, 일정 부분 집 평면을 표준화한 것이 특징이다. 또 한옥들이 나뭇가지처럼 뻗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어 한옥의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독특한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북촌 한옥의 가치는 여전히 주거 생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붕 위 잿빛 기와의 물결,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 바람 불 때 들리는 문풍지 소리, 황급히 여닫는 미닫이문 소리는 사람 사는 한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다.

▦건축ㆍ문화재 전문가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조차 서울에서 '서울성(性)'이 가장 잘 버무려져 있는 곳으로 북촌 한옥 마을을 꼽는다. 사람을 매개로 전통과 현재가 살 부비며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없고, 한옥의 전통마저 벗어 던진 북촌 한옥 마을은 한국민속촌과 다를 바 없다. 북촌 가꾸기 사업을 역이용한 투기 세력에 의해 '유령 한옥''무늬만 한옥'이 등장한 것은 사업의 사후 점검과 관리에 무신경한 서울시 탓이 크다. 후손들의 겉치레 행정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의 원형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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