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유럽 민주화, 소련 해체 등은 곧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도 1989년 <역사의 종언> 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진보의 최종 단계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실패와 자유 민주주의적 이념과 질서의 범세계적 확산이라고 봤다. 역사의>
하지만 장벽 붕괴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역사의 종언'이론이 '종언'의 위기에 빠졌다. 세계 금융 위기는 미국과 서유럽이 이끌었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라는 결론을 시험대에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독일 붕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이념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자유민주주의에 가장 강력한 신흥 라이벌로 러시아와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정치체제를 들었다. 이들의 꾸준한 경제 성장은 서양식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양국은 더 강력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에 보다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조나던 이얄 영국 왕립연합서비스재단의 수석연구원은 "전 세계 수억명의 인구는 중국과 러시아를 보면서 민주주의가 논쟁적인데다 경제적 효율이 떨어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은'번영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심지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후쿠야마 교수조차도 "1당 독재로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킨 중국의 예상치 못한 성공은 독재정치가 운명을 다할 것이라는 관념을 깨버렸다"고 말했을 정도다.
수치상으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산은 주춤거리고 있다. 미 정부지원 연구기관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는 전세계 46%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인 1989년의 36%보다 늘었지만, 이는 1999년 이래 10년 동안 변화가 없는 수치다. 러시아를 비롯한 그 이웃 국가들, 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베를린 붕괴 이후 민주주의 제도를 선택했다가 권위주의 정치제도로 복귀하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체제를 대안으로 보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일부 권위주의 국가는 석유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값이 떨어지면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이 이유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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