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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날치기 쇼도 창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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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날치기 쇼도 창작물이다

입력
2009.11.0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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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이 '위법'과 '유효'의 불안한 동거에 들어갔다. 절차적으로 위법이 분명하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아리송한 결정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법리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졌다거나, 존재가치를 망각하고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이 줄을 잇는다.

잘못된 창작도 저작권은 보호

필자가 보기에 헌재의 결정은 법리적으로 탁월하다. 우리 저작권법은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위법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저작물의 저작권은 유효하다고 판정한다. 2차적 저작물 법리다.

원래의 저작권자 동의 없이 다른 언어로 번역 출판하거나, 그의 책을 달리 각색하였다면 저작권 침해 행위로서 위법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법하게 처리된 번역서라고 해도 새로운 저작물로서의 저작권 보호를 받는 데 문제가 없다. 결과적으로 유효한 것이다.

원래 저작자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 별도의 법적 책임이 수반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저작행위가 무효한 것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새로 저작물을 만들 때 '창작성'이 인정된다면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은 바로 이런 2차적 저작물의 법리에 충실하다. 날치기 쇼가 새로운 저작물로서 저작권성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국회의 '창작적 요소'가 입증됐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자료에 의하면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멀리 있는 다른 의원의 투표권을 대리해 행사해 주는 행위,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표결을 실시해 가결을 선포한 '일사재의(一事再議)의 행위'가 확인되었다.

상상을 초월한 이러한 위법 행위는 국회만이 보여준 특별한 창작적 요소이고 날치기 쇼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국회만의 저작물로 인정된 셈이다. 그러므로 필부들이 함부로 날치기 쇼를 공연했다가는 국회의 고유한 권리인 저작권 침해 행위로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국회에겐 차마 낯뜨거운 짓이고, 기껏 저작권 법리 심판소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한 헌재는 '정치적'이라는 이름표를 오래도록 떼지 못할 일이다.

날치기 쇼의 저작권자로서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헌재 결정은 외형상 청구를 기각하여 관련법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한 재판관은 각각 3명씩이었다. 나머지는 국회의 자율에 맡겨 문제를 시정하도록 하자거나, 혹은 오히려 무효라는 판단을 하였다. 입법부는 위법하다고 판단된 부분을 스스로 보정(補正)할 책임을 안고 있다.

미디어법 처리는 국회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3월부터 100일, 다시 헌법재판소에서 정확히 100일 동안 논란을 거쳤다. 백날 논의하고, 다시 백날을 씨름한 가장 큰 이유는 여론 다양성, 미디어 다양성 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개정 신문법은 여론 집중의 문제 해결을, 방송법은 미디어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여러모로 미흡하다.

국회 스스로 위법 바로잡아야

여론과 미디어의 다양성은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뼈와 살이다. 관련 규정을 충실하게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가 유독 100일을 좋아하는 것은 신화적 유전성을 갖는다. 단군의 어미 곰에게 쑥과 마늘을 한 줌 쥐어주고 견뎌볼 것을 권한 날이 100일이다. 그러나 웅녀가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삼칠일, 스무 하루 만이었다.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여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 정책가들의 성심과 의지가 관건일 것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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