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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4년 전 거금 주고 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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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4년 전 거금 주고 산 자전거

입력
2009.11.0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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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 중에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가 있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한 가장이 자전거를 잃어 버려 아들과 함께 하루 종일 자전거를 찾아 나서는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의 사건이 얼마 전 내게 실제로 일어났다.

물론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전거 하나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딱한 신세도 아니었고, 자전거가 없으면 당장 생계에 타격을 입을 정도로 눈물겹도록 어려운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며칠 동안 동네를 배회하며 찾아 다닐 때는 그 영화의 주인공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우리집 자전거를 비롯해 무려 4대나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경비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으로 연신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하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건 하루 종일 혼자서 이리저리 수고하시는 경비 아저씨의 잘못도 아니고, 여느 날과 똑같이 자물쇠로 잘 잠가 놓은 우리들의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잃어버린 그 자전거는 4년이 넘도록 공휴일을 제외하고 나와 함께 있어준 내 소중한 길동무였다. 그 자전거로 막내녀석을 뒤에 태우고, 학교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이어서 출근을 했었으니 말이다.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시작한 부업은 동네 한의원에서 환자들을 도와 주는 일이었고, 퇴근을 하고 나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할인매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오곤 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늘 덤벙대기 일쑤인 아들 녀석이,

"엄마, 수학책을 놓고 왔어."

"엄마 준비물을 깜박했어."

이렇게 전화할 때면 나는 바람같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다시 달려가 두고 간 물건들을 아이의 학교로 전달하곤 했었다.

그 자전거를 처음 만난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 참, 자전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 내 몸에 맞는 양장 한 벌 해 입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까다롭게 구나?"

같이 다니던 남편이 드디어 한 소리 해대며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나는 드디어 나와 함께 동고동락할 나의 자전거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머나, 저거야 저거! 나 저거 살래!"

역시 물건을 볼 줄 안다며 이미 거래가 끝난 것처럼 조립을 하기 시작하는 가게주인에게 남편은,

"어? 이거 값 좀 나가겠는데? 잠깐만요 다른 것도 좀 봅시다."

하며 손으로 살짝 저지를 하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을 정도로 그 자전거는 정말 탐이 났었고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내 얼굴에 벌써 다른 자전거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가게 아저씨는 10원도 에누리를 할 생각이 없다며 의기양양해 있었고 나는 남편의 눈 흘김도 아랑곳 없이 결국 2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계산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을 앞두고 특별히 아버지가 사주신 새 운동화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했던 그 때처럼 나는 새 자전거를 아이 쓰다듬듯 그렇게 매일 만져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아파트 자전거보관구역에 감히 내 귀한 자전거와 다른 자전거를 함께 세워두는 것이 싫어 매일 매일을 엘리베이터에 끙끙대며 태워가지고는 현관 계단 앞에 두곤 했었다. 아마도 6개월 정도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자전거에 대한 나의 애정이 조금씩 식어가기 시작한 것은 자전거 안장 끄트머리에 실밥이 뜯어져 버리고, 바퀴도 이제 많이 더러워진데다 뒷바퀴에 멋지게 장착한 안전등의 불이 고장 나 버린 뒤부터였다. 나는 점점 내 자전거에게 소홀해지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는 내 자전거도 동네의 다른 자전거와 똑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아침 저녁 닦아주고 기름 쳐 주던 내 관심과 애정도 슬슬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곳곳에 먼지가 끼고 이제는 성능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자전거 수리를 할 때마다, 세련되고 근사한 새 자전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낡고 초라한 내 자전거와 슬슬 비교해 보기도 했었고,

'이 참에 새것으로 그냥 바꿔 버릴까?'

하는 강한 유혹에 끌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꼴 좋게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명견이 주인집을 용케 알고 다시 찾아 오듯이 어느날 갑자기 나의 자전거도 내 집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며칠 해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조만간 다시 사러 갈 계획이다. 출근도 그렇고 장보기도 그렇고, 자전거가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말이다.

아마도 저번처럼 그렇게, 혹은 그보다 더 까다롭고 깐깐하게 나의 새 자전거를 구하러 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내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사게 되면 예전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며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낡고 보잘것없는 때가 되면 정답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함부로 대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마음 같아서는 평생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 뿐이겠지만, 돌아서면…세월이 지나면…내가 지치고 힘들면…처음의 다짐과 약속은 점점 잊혀져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 아니겠는가.

사람 사는 게 다 이 자전거와 같은 것 같다.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함께 오래 있으면 싫증도 나고 모자란 점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다 감싸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자전거를 잃어버림으로써 깨닫게 된 것이다.

요즘 자전거 애용자가 늘어나 가격이 확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자꾸 한숨만 나온다. 더 속상한 것은 그에 반해 자전거 주차공간의 허술함과 자전거 전용도로에 떡 버티고 서있는 얄미운 자동차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는 자물쇠줄 하나에만 의지할 뿐, 자전거 도둑들은 예전보다 더 대범해지고, 조직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앞장서는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이제 점점 나은 대책을 세워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대구 북구 읍내동 - 하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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