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치매 나타난 달이 / 흰 구름을 좇아 떠나는 것 아니아? / 새파란 나리(내)에 / 기랑(耆郞)의 즛(모양)이 있어라! / 이로 나리 조약[小石]에 / 낭(郎)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과져 / 아으, 잣 가지가 높아 서리를 모를 화반이여.'(<찬기파랑가> . 양주동 해독) 찬기파랑가>
신라 35대 경덕왕 때의 스님 충담사(忠談師)가 지은 사뇌가이다. 우리 향가 연구의 길을 개척한 무애 양주동 선생이 '최고의 사뇌가'로 평가하여 새긴 바에 따르면, 우리 사뇌가의 기상천외한 시법이 놀랍게 다가온다. 지은이는 기파랑이라는 화랑장의 드높은 인격과 지조를 기림에 한 마디도 직접 말함이 없이, 돌연히 달과 문답 체를 빌려, 암유(暗喩)로 나타냈다.
좀더 쉽게 풀자면, '구름 장막을 열어 젖히며 나타난 달이여 / 너는 흰 구름을 좇아 서쪽으로 떠가는 것이 아닌가? / (달이 대답하기를) 나는 흰 구름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로세, 멀리 경주 알천(閼川) 냇가에 기파랑이 놀던 모습이 있어 / 내 그 화랑이 지녔던 '마음의 끝'을 좇으려 하옵네'라고 읽을 수 있다. 기파랑의 마음 끝자락을 따르고자, 달님도 매일 낭(郞)이 가셨을 서방 정토의 그 서쪽으로 간다는 시상이 놀랍다.
이것이 기파랑을 찬미하는 앞의 넉 줄 여덟 구(句)의 뜻이고, 마지막 한 줄 2구에서는 서리도 침범할 수 없는 잣나무의 높은 기상으로 정서(正敍)하여 찬미를 강화했다. 화반(花判)은 화랑의 상징이다.
이렇게 이 시는 시인의 물음과 달의 대답과 감탄의 결사(結辭)라는 세 단락으로 되어 있고, 특히 시의 벽두에 '냅다 던지듯이 멋들어진 허두(虛頭)'인 '열치매'(무애의 표현)는 그 발상에서 동서고금의 시가 따를 수 없는 이 시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더구나 서술어로 시작하는 시법은 우리말의 묘미를 한껏 살린 이 사뇌가의 독창이며, 마지막 '마음의 끝을 좇과저'는 이 노래의 최고의 묘기, 기절(奇絶)한 시상으로, 기파랑의 높은 지조를 눈에 보듯 선연한 표현이다.
이런 기발한 서두는 송강 정철(鄭澈)의 '저기 가는 저 각시'(<속미인곡> )나 '강호에 병이 깊어'( <관동별곡> )라도 비교가 안 되는 발상이라는 것이 무애의 지론이다. 관동별곡> 속미인곡>
그런데 경덕왕 24년(765) 삼월 삼짇날, 왕은 나라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누각에 올라, 지나가는 스님을 모셔오게 했는데, 이때 불려 온 스님이 충담사였다. 당연히 임금이 낯선 스님에게 그대가 누구냐고 물었고, 충담이라고 대답하자, "내 들으니 기파랑을 기린 사뇌가가 뜻이 매우 높다 하니 과연 그러한가"고 묻고, 충담사는 사양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임금은 이런 스님이기에 안심하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안민가(安民歌)> 를 짓게 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국사(國師)는 어디 가고, 행각승(行脚僧)을 모셔다 나라 제사를 모셔야 했던 비상 상황에서, 백성만이 아니고 "임금답게 신하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라"고 하는 <안민가> 는 그대로 <찬기파랑가> 의 높은 뜻에 이어지는 것이리라. 찬기파랑가> 안민가> 안민가(安民歌)>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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