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출판계가 뒤집혔었다. 수상자 발표를 전후해 출판계가 긴장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 비하면 한결 차분해진 게 사실이다. 그때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번역과 리라이팅 작업을 뚝딱 해내고 며칠 만에 책을 서점에 깔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디서 어떻게 원고를 구했는지, 번역은 제대로 했는지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번역서를 내는 솜씨가 놀랍기도 하고 완성도를 따지지 않은 채 책을 내던 당시 풍토가 새삼 아쉽기도 하다. 어쨌든 그때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의 위세가 그렇게 대단했고 어느 정도의 판매는 보장해주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타 뮐러의 작품 계약을 둘러싸고는 너무 조용한 것 같다. 이면에서는 경쟁을 하고 있겠지만 노벨문학상의 열기가 이렇게까지 식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최근 수상 작가 중 내용이 어렵지 않고 대중적 요소를 갖춘 오르한 파묵이나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말고는 판매가 신통치 않았던 점을 기억하면 출판계가 왜 이렇게 조용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출판계는 헤르타 뮐러의 작품이 대체로 난해하다고 평가하면서 그의 작품이 번역돼도 판매 부수가 2만부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의 책을 읽겠다는 일반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그의 작품은 분위기와 문체가 매우 독특하다. 문장은 대부분 주어와 동사로 이뤄져 있으며 그런 시 같은 문장이 죽 이어져 긴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술술 읽기 어려울 것이라고 출판계 관계자는 말한다.
그래도 노벨상은 나은 편이다. 부커상, 공쿠르상, 아쿠타가와상 등 유명 해외 문학상 수상 작품도 과거보다 번역이 훨씬 줄었다. 이들 작품 역시 번역을 해도 판매가 많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문학상에 대해 한국 독자와 출판계가 갖고 있던 과도한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인데 이를 좋게만, 혹은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다만 출판계나 독자 모두 외국 책을 대할 때 주체적인 입장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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