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폭식과 폭음을 즐기는 B급 식도락가라고 자칭하는 미술사가 미야시타 기쿠로의 글을 읽는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모습이 글을 읽는 내내 어른댔다. 아마도 그는 배 위로 바지를 끌어올려 입을 만큼 뚱뚱한데다 한두 개의 지병을 가지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그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로 인한 불쾌감과 취기로 깨어날지도 모른다.
폭음과 폭식은 주로 저녁 시간에 이루어진다. 시간에 쫓겨 아침을 거른 이들은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에 참았던 허기를 푼다. 비교적 한가한 저녁에야 굽고 끓이는, 시간을 들이는 음식들을 먹는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저녁 식사는 최후의 만찬이라도 하는 듯 음식들로 넘쳐난다. 모임이 끝나고 이어진 어제의 자리에서도 그랬다. 튀김과 국수, 족발 등 맥주집의 갖은 안주가 모두 나왔다. 그 자리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나 음식은 우리가 먹고 남을 만큼 차려졌다.
포만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정신도 더불어 기름져지는 듯한 느낌이다. 폭식, 폭음을 일삼는 기쿠로의 글 가운데 가장 끌렸던 음식은 수도사와 농부들의 단촐한 식사였다. 끓인 콩과 딱딱한 빵, 삶은 감자와 물. 그것이 전부이다. 청명한 가을날만이라도 저녁 식사는 소금과 이스트로 구운 빵과 깨끗한 물 한 잔으로 하고 싶다. 그것이 귀뚜라미의 맑은 소리가 부러워 이슬만 먹은 나귀의 욕심일지라도.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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