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내년엔 '산업의 쌀' 반도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 놨다.
이는 사실상 세계 정보기술(IT)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권오현(사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담당 사장은 28일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타운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에서 "내년엔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소폭의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D램은 주로 컴퓨터나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며, 낸드플래시는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에 많이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36%, 낸드플래시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지배적인 사업자. 1등 업체가 다양한 시장조사와 자료분석을 통해 전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IT 경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의 공급 부족 현상은 경기가 그 만큼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가격은 이미 상승세가 꾸준하다. D램 가격(DDR2 1Gb 고정가 기준)은 1월 81센트까지 추락했었으나 5월 1달러대로 올라선 데 이어 최근에는 2달러 선도 돌파했다. 낸드플래시 가격(16Gb 고정가 기준)도 지난해말 2달러 선마저 붕괴됐으나, 최근에는 다시 5달러대로 회복됐다.
권 사장은 "반도체 시장은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 역성장을 했는데 이는 반도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그러나 올 하반기 이후 회복 단계로 접어들고 있어 앞으로는 연 평균 11%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반도체 시장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는 것은 반도체의 주요 구매처인 컴퓨터와 휴대폰 업계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 삼성전자는 컴퓨터의 경우 2011년 11.4%, 2012년 15.4% 성장할 것으로, 휴대폰은 2010년 8.3%, 2011년 6.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경쟁 업체들의 3년 연속 적자 규모가 250억달러(업계 추산)에 달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오히려 그 동안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권 사장은 "올해 166억달러, 2012년엔 255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창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권 사장은 이를 위해 ▦기술 리더십 선점 ▦제품 차별화 추구 ▦원가 경쟁력 확보 ▦시스템고밀도집적회로(LSI) 사업의 차세대 성장 동력 육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편 권 사장은 이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그 동안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4번의 결정적 순간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첫번째 고비는 1984년 반도체 2라인 건설 당시 5인치 웨이퍼 생산이 일반적이었을 때 6인치를 채택함으로써 선발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두번째는 1988년 회로의 집적 방식을 위로 쌓아 올리는 스택(Stack) 방식으로 할 것이냐, 아래로 깎아 내려가는 트렌치(Trench) 방식을 쓸 것이냐 사이에서 스택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트렌치 방식을 고집한 업체는 이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세번째는 1993년 5라인 건설시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 양산 라인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생산력을 높인 것이 메모리 세계 1위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네번째는 2001년 낸드플래시 사업 진출 시 일본 업체들의 기술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독자 개발의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모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고독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그룹측의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회사의 존망이 달린 선택의 순간 마다 이 전 회장의 빠르고 미래를 내다 본 결정이 결국 시장 선점으로 이어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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