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슘페터(1883∼1950)는 현대사회는 과학기술의 혁신이 있어야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과학의 진보, 기술의 혁신 없이는 성장과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 비해 후발국에 불과했던 미국이 기초연구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를 바탕으로 유럽의 기술 선진국을 추월하고 20세기 세계경제 주도권을 확보한 것은 슘페터의 통찰력에 대한 역사적 실증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선진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를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단기 효과보다 장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초연구를 위한 지원과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국가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여 세계경제 주도권을 잡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출범과 함께 향후 10년간의 기초연구 예산을 2배로 늘렸다. 이를 통해 미국은 새로운 과학지식 창출의 프런티어가 되어 에너지 건강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21세기 '거대한 도전(grand challenges)'의 해결사로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우리 정부는 1989년을 기초과학 연구 진흥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2000년 대 들어 연구논문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우리 경제규모에 걸맞은 성과를 내게 되었다. 하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총논문 피인용 수는 세계 14위에 머물러 선진국의 축적된 과학적 지식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3대 학술지로 평가 받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게재된 우리나라 논문도 꾸준히 증가하여 1995년 2편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25편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아직 세계 19위에 머무르고 있다. 과학적 지식은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운 '암묵적 속성'을 갖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영국 더 타임스 지가 최근 발표한 '2009 세계 대학 평가'는 기초연구를 비롯한 대학의 재정지원에서 선택적 투자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47위), KAIST(69위)가 세계 100위권으로 평가되었고, 포항공대(134위), 연세대(151위), 고려대(211위)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는 서울대가 24위, 공학 분야는 KAIST가 21위에 랭크 되었다. 주목할 점은 하버드(1위)ㆍ케임브리지(2위)ㆍ예일(3위)ㆍ런던(4위)ㆍ임페리얼(5위)대학에서 보듯 세계 최고 대학은 최고 수준의 기초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기초연구 진흥을 통한 과학기술 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2012년까지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을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기초예산도 2배 이상 늘리게 된다. 한정된 연구개발 예산을 기초연구에 집중 배분함으로써 성장잠재력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연구제도를 선진화 할 계획이다. 모험연구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미개척 연구분야, 융합연구 분야 등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수학ㆍ과학 교육 특성화를 통해 기초과학 우수인재를 육성하고, 젊은 연구자를 조기에 발굴하여 미래의 리더로 양성할 계획이다. 양적 연구성과 보다 질적 수준을 중점적으로 살피는 선진형 평가제도가 전제돼 있음은 물론이다.
김중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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