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피고인들에 대해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것은 불법 농성 및 시위문화에 대한 단죄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화재 원인이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이라는 검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고 "공무집행 중이던 경찰을 사망하게 한 행위는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한 것"라고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피고인 측은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들은 모두 배척하고,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며 반발하고 있어 항소심과 대법원의 최종심에 이르기까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은 화염병
농성자들의 유ㆍ무죄 판단의 기준이 된 1월 20일 망루화재 원인에 대해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투척하면서 망루 3층 계단에 불이 났고, 망루 안에 있는 세녹스 유증기에 불이 옮겨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현장 검증 결과 3층 계단에 화염병 투척 흔적이 남아있고, 촬영 동영상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이 제기한 ▦스위치가 켜진 발전기 ▦경찰이 사용한 전동 글라인더 ▦유증기와 정전기의 마찰 등 다른 가능성은 배척했다. 망루에서 2개의 발전기가 수거됐으나, 스위치가 켜진 것은 망루 바깥에 있던 것이고 망루 내에 있던 것은 스위치가 꺼진 채로 발견돼 화재와 무관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전동 글라인더에 대해서도 "화재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 작동 소리가 녹음돼 있지 않아 투입 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화재 진압 후 소방관이 사용한 것으로 결론 냈다. 유증기와 정전기 마찰에 따른 스파크 발생은 살수차를 동원해 지속적으로 물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봤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
재판부는 특공대 투입의 적법성 판단에 앞서 농성의 정당성과 위험성부터 판단했다. 재판부는 "농성자들은 골프공, 염산병, 화염병 등을 준비한 채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설치해 불법농성을 벌였다"며 "설사 동기가 정당하더라도 수단과 방법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또 농성장으로 사용된 남일당 건물은 왕복 8차선 도로 인근으로 서울시의 중심에 해당해 일반 시민에게 위험성이 컸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투입된 경찰력은 최소한의 장비만 휴대했고, 투입 직전까지 농성자들과 협상하려고 하는 등 위법성이 없다"며 경찰진압에 대해서도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 농성자들에 대해선 경찰력 철수라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요구조건을 내세운 채 위법한 농성을 벌인 것으로 봤다.
수사기록 비공개 논란 등
검찰의 수사기록 3,000쪽 비공개에 대해 재판부는 "아쉬움이 있다"는 한마디만 남겼다.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기록만을 검찰이 제외시켰다며 공소 자체의 부당함을 호소했고, 재판부 기피신청과 변호인 집단사퇴 등 재판파행의 원인이 됐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따라 비공개 수사기록은 항소심에서도 핵심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현행법이 철거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돼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우리사회의 관심이 필요하고, 입법부ㆍ행정부에서 논의가 있어야 하지만 이번 재판의 판단 영역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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