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연기제도가 병역비리의 주요 수단으로 악용돼온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환자 바꿔치기' 등 병역비리를 수사해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7일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공무원 시험 등을 핑계로 입영을 미뤄온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이모(27)씨 등 73명과 브로커 차모(31)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돈을 주고 입영을 연기했지만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는 67명에 대해서는 육군본부 고등검찰단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달 '환자 바꿔치기'수법으로 병역 신체검사 등급을 낮게 받게 해준(병역법 위반) 혐의로 브로커 윤모(31)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입영날짜를 연기한 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왔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 등은 브로커를 통해 회당 10만~130만원을 주고 입영을 연기하며 재검을 위한 시간을 벌고, 재검 때 교통사고 및 의도적 질병(척추질환, 정신분열, 과체중 등) 등으로 공익판정 등을 받았다.
이들 중 김모(27)씨는 수 차례에 걸쳐 브로커 윤씨에게 총 300만원을 주고 최근 8년간 공무원시험 응시, 질병, 해외단기여행 등의 사유로 22차례 걸쳐 입영날짜를 연기한 끝에 우울증으로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다. 신체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았던 또 다른 김모(26)씨는 6년간 6차례에 걸쳐 입영날짜를 연기한 끝에 재검을 통해 척추질환을 이유로 공익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현행 병역법에서는 병역기일 연기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공무원시험, 질병, 단기해외여행, 해병대 등 타군 지원 등 갖가지 사유로 만 29세 6월 30일까지 횟수에 제한 없이 연기가 가능하다"고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입영일자 연기자수는 2005년 4만3,072명, 2006년 4만7,479명, 2007년 5만28명, 지난해 5만706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브로커를 통해 입영을 연기한 뒤 교통사고, 과체중, 우울증 등 의도적 질병을 이유로 병역을 감면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연기횟수 제한 등 관련 법규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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