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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진영 버려야 중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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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진영 버려야 중도가 산다

입력
2009.10.2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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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중도 실용을 집권 중반기의 국정철학이자 정책노선으로 완성해가던 무렵인 8월 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났다. "MB 정권이 실용정부로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정권을 넘겨준 진보 쪽도 차제에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정치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던 박씨가'배제의 정치'로 되돌아가는 정권에 깊은 실망감을 표시하던 때였다.

시민사회 누르는'원순씨 신드롬'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박씨는 권력과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 협력체제를 가로막고 깨는 배후 지휘부로 국가정보원을 지목하며 MB정부가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가 끝나면 레임덕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정원이 즉각 명예훼손 소송을 들고나온 것은 이미 아는 바다. 그런 시기에 박씨를 만난 것은 그 즈음 어떤 저녁 자리에서 '이념보다 실용에, 또 좌우보다 중간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 대통령과 박씨 사이에 골이 깊어지고 파열음이 커지는 원인을 놓고 벌인 논란 때문이었다.

문득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로 잘 알고 여러 인연을 맺어온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속을 터놓고 얘기하면 피차 오해도 풀고 어떤 반전의 계기도 마련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동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박씨도 이미 "올 봄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 찾아왔길래, 진정 성공하는 중도실용 정권이 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솔직하게 전달했으나 달라지는 게 없더라"라고 말했던 터였다.

그래도 박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녁자리 사람들의 예상대로 박씨는 대통령과의 독대 가능성은 물론 결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충언은 정무수석을 통해 충분히 했는데도 3개월 넘도록 아무런 피드백이 없고 대통령이 구시대적 사고와 행태에 젖은 인물들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희망제작소의 잇단 사업 무산과 국정원 소송 등이 초래할 일종의 부정적 신드롬을 되레 걱정했다. '저항과 투쟁보다 희망과 대안을 찾는,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생활 속 시민운동'을 지향해온 희망제작소와 자신마저 배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것이다. 이같은'원순씨 신드롬'이 일반화되면 전반적 시민사회의 활동이 위축될 뿐 아니라 이들을 후원해온 기업과 사람들도 권력과 공안기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인사를 보면 중도란 말과 달리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구도와 진영 의식이 단연 돋보인다. 대표적 친서민정책으로 꼽히는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재단, 후상환제 등록금 대출, 복지지출 확대 등도 '밥심'에 취약한 진보개혁 진영을 겨냥한 흔적이 짙고, 대선 기여도가 공직과 공기업 인사에서 절대적 잣대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문제는 비록 중도ㆍ친서민정책이라고 해도 재원 조달과 운영 방식, 부작용 등 잘 따져봐야 할 대목이 많은데, 어느새 전문가그룹과 학계가 이런 역할을 꺼린다는 점이다. 섣불리 나섰다가 '찍히면' 여러모로 피곤하고 자기들이 속한 조직에 누가 된다는 게 최근 접한 몇몇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괘씸죄에 걸린 공공기관 사장을 밀어내기 위해 온갖 해괴한 방법이 동원되고, 개인 홍보에 회삿돈을 펑펑 쓴 공기업 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되레 큰소리치며, 오만불손한 피감기관의 국감태도가 부쩍 늘어나고 청와대의 기강 해이가 일상화한 것 등도 이런 기류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내편 네편 가르면 친서민도 실패

압권은 박원순씨 등이 주도한 시민연대 '희망과 대안'창립식이 극우세력의 방해로 무산된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이야 누구나 짐작할 것이니 재론조차 하기도 싫지만 70~80년대 식의 작태가 백주대낮에 서울도심에서 발생한 것만으로도 G20 주도국으로 세계의 중심이 됐다며 만세삼창을 불렀던 정부는 낯을 들기 어렵다.

"결국 정치야심을 드러내는구나"라며 박씨 등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실망은 내 편, 네 편 하는 진영의식에 빠져 불건전한 쏠림현상을 밀어붙이는 집권세력에게 돌려져야 한다. 이 대통령이 그런 일에 관여할 리 없겠지만 책임에선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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