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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위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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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위한 안내

입력
2009.10.2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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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원제 'Inglorious Basterds')은 웃기고 통쾌하고 지적이며 새롭다. 장면마다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고 오락거리로서의 영화적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개떼들'이라는 미군 특공대의 엽기적인 활약상과, 나치 친위대에 가족을 잃은 유대인 여인 쇼샤나(멜라니 로랑)의 복수극을 접붙인, 수다스런 영화 '바스터즈'는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같은 단순 상업영화가 아니다. 사골처럼 우릴수록 제 맛이 난다. 영화의 역사를 꿰고 있다면 더더욱 입맛을 다시게 된다.

전세계에서 제작비(7,000만 달러)의 4배에 달하는 2억8,000만 달러 가량을 벌어들인 이 전쟁영화의 지휘관은 잘 알려졌듯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으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 '킬 빌' 등을 거쳐 명장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장르로 장르를 무너뜨리다

영화는 '옛날 옛적 나치가 지배하던 프랑스에서'(Once Upon A Time In Nazi Occupied France)라는 안내 문구로 시작한다. 조용한 전원에서 한 남자가 도끼로 장작을 패다 멀리서 등장하는 독일군의 모습에 당황하는 장면이 뒤따른다. 눈썰미 있는 영화광이라면 무릎을 칠 것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영웅과 악당의 구분이 불분명한 이탈리아산 서부영화)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 감독의 고전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의 한 장면을 복사하듯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알도 대위(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미군 특공대의, 정의롭지만 잔혹한 행각도 어딘가 낯익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가 등장하는 '언터쳐블'을 연상케 한다) 독일군 포로를 심문하거나, 단도로 포로의 이마에 서슴지 않고 나치 마크를 새긴다. 이들의 행위는 거리의 법칙에 익숙한,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난 도시의 뒷골목 갱들과 다를 바 없다. 인간적인 면모를 최대한 지키려는, 정의롭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속 미군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바스터즈'는 이렇듯 스파게티 웨스턴과 갱스터 영화의 틀을 빌려 전쟁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허물고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안긴다. 전쟁영화라지만 대규모 전투 장면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장르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익숙한 창의성과 불편하지 않은 파격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1960~70년대 음악 4곡을 사용한 점도 '바스터즈'의 정체성을 명확히 한다. 모리코네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와 '석양의 무법자'(역시나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표작이다), 갱스터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에서 레오네 감독과 짝패를 이뤘다.

복수극에 담은 영화의 역사

타란티노의 전작 '킬 빌' '데쓰 프루프' 등과 마찬가지로 '바스터즈'도 복수를 이야기한다. 현대사를 끌어안아 복수의 스케일을 키우고 이야기의 폭을 넓힌 점이 다를 뿐이다. 여기에 '바스터즈'는 영화에 얽힌 당대의 이야기를 담아 영화광의 흥미를 부추긴다.

쇼샤나가 운영하는 파리의 영화관은 독일 감독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의 영화를 상영한다. 리펜슈탈은 나치의 전당대회를 담은 '의지의 승리'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기록한 '올림피아'로 유명한 당대의 다큐멘터리 감독. 그는 히틀러의 연인이자 나치 협력자라는 의심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아무리 나치 치하라지만 쇼샤나가 리펜슈탈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설정은 다소 의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당대 독일의 또 다른 명감독 게오르그 빌헬름 파프스트(1895~1967)의 영화를 동시 상영한다. 파프스트는 나치가 정권을 잡자 프랑스로 도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유대인 박해문제를 다룬 '심판' 등을 만들었다. 쇼샤나는 그를 통해 은근히 반 나치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한마디도 재미있다. 처칠은 "나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독일 영화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었다"는 보고를 받자 이죽거린다. "어디 그렇다고 루이 B 메이어를 따라 갈까." 메이어는 미국의 유명 영화사 MGM을 공동 설립하며 할리우드를 주름 잡았던 유대인이다.

영화 속에서 괴벨스가 쇼샤나에게 "세계 최고의 배우"라고 소개하는 에밀 야닝스(1884~1950)의 등장도 흥미롭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배우가 되었다가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1927년 '육체의 길'로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뒷날 나치 선전영화에 출연하며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영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쇼샤나가 그의 영화관에 집결한 나치 수뇌부를 필름을 태워 몰살하려는 장면이다.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화성 강했던 당시의 필㎱?다이너마이트에 버금가는 위험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타란티노 감독은 나치라는 악에 영화로 일조한 자들을 그렇게 '영화'로 단죄하려 한다. 아주 웃기게, 그리고 아주 통쾌하게 말이다.

야비한 유대인 사냥꾼인 나치의 란다 대령을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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